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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이야기(33)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김성일

작성자
SS Kim
작성일
2017-12-01 09:50
조회
361
우리 아이들 인터뷰(33)-김성일

“하나님이 세워주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얼마 전 김성일군의 ICA주최 제 4회 동경쇼팽콩쿠르에서의 대상 수상 소식을 듣고 국제피아노 콩쿠르에서 수상할 때 마다 몇 번 한나프레스에 짧은 기사를 장식했던 성일군을 ‘우리 아이들’ 칼럼에 주인공으로 정했다. 지면 인터뷰를 통해 그가 살아왔던 이야기를 들어본다.

성일이는 2002년 부모님을 따라 말레이시아에 왔다. 페어뷰국제학교에 폼1(중1)로 입학하면서 그의 말레이시아 생활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그는 또래의 여느 평범한 학생들과는 다른 인생을 살았다. 중학생때 성일이는 진로를 피아노로 결정하면서 하루에 기본 8~10시간씩 피아노를 쳤다. “그때는 밥만 먹고 앉아서 피아노만 쳐서 몸무게가 100Kg 정도 나갔어요. 가든국제학교에 다닐 때, 콘서트를 준비하려고 친구들과 연락도 끊고 딱 4개월간 열심히 피아노를 쳤어요. 학교의 양해를 구해 학교도 가지 않고 열심히 쳤어요. 하루에도 수십 번 그만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손가락도 많이 터지고 굳은살도 박였지요.” 기회가 될 때마다 국제 콩쿠르에 나간 그는 2005년 상하이에서 개최된 China Young Pianist Award, 2006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Youth Age Pianist Award, 2008년, 2009년 동경 국제피아노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성일이는 말레이시아에 와서 현재 열린교회 피아노 반주로 봉사하고 있는 진향희씨로부터 정식으로 피아노 레슨은 받기 시작했다. 진향희씨는 지금까지 많은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왔지만 성일이처럼 피아노에 열정을 가진 학생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진향희씨는 재능도 재능이지만 이렇게 열정적으로 열심을 다해 연습하고 연습하는 거북이는 토끼가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실력이 생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성일이는 하루에 10시간이 넘도록 연습을 하는 통에 집에서는 피아노를 그만 좀 치라고 부탁을 하고, 진 선생님은 성일이의 손가락 힘줄이 늘어날 것을 염려할 정도였단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피아노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하는 악기지만 성일군은 손가락 하나 하나의 세심한 터치감이 중요한 피아노는 다른 악기와는 다른 오케스트라 악기여서 한번에 많게는 11~12개의 음을 치게 돼,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어려움만큼 피아노가 주는 매력이 그 어떤 악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성일이는 중·고등학교 시절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몽키아라 공사판에서도 일을 해 봤다. 이곳 국제학교를 채 졸업하지 못하고 그는 서울에서 검정고시로 대입 자격을 획득했다. 피아노뿐 아니라 하고 싶은 일도 많고 꿈도 많던 청소년이었던 성일이는 연예인이 되어 일단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외 음악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뒷받침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검정고시를 치르고 연예인 기획사 오디션을 거쳐 2007년에 한국에서 1집 앨범을 내고 가수로 연예인 활동도 했다. 물론 준비하면서 고생도 많이 했다. 그 당시에는 연예인 되려는 게 허황된 꿈이라는 걸 모르고 뛰어들 때였다. 나중에 연예인이 앞에서 보여 주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 손을 털었다. 지금 가수와 연예인을 꿈꾸는 친구들에게는 한 번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라고 말해 주고 싶단다. 1~2년, 2~3년의 세월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고 연예인을 한다고 해서 꼭 뜨는 것은 아니라고.... 시간 허비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다른 꿈을 키워 나가는 편이 더 나을 경우가 많다고 충고해 주고 싶단다.
계속해서 피아노를 치면서 미국 버클리대학이나 타 유명한 음악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재정 문제가 해결될 길이 없었다. 성일이는 지금도 음악공부를 한다는 후배를 만나면 항상 묻는말이 있다. 첫째 집에서 재정적으로 후원을 해 줄 수 있는지 그리고 둘째 음악이 단순한 취미 이상인지를 묻는다. 음악으로 직업을 삼은 사람은 일단 돈 욕심을 버려야할 것 같다는 성인이 되어 가고 있는 스물두살 성일이의 말이다. 국제대회에 참가하려면 항공경비도 그렇고 모든 재정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작은 교회를 담임하고 계신 부모님에게 의존할 수 없던 성일이는 갖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피아노를 치고 돈을 모아 콩쿠르에 참여하곤 했다.

2010년에는 독일, 잘츠부르크, 빈, 뉴욕 등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권위있는 현역 연주자들로 구성된 마스터 클래스인 프랑스 Filiere courte Diplome Superieur d’Execution de Piano 과정에 입학했다. 성일이는 현역 교수들의 추천이나 그동안의 수상 경력 등으로 코스 신청을 한 후 학교 측의 선별로 입학해 일정 기간 동안 담당 교수 아래서 사사해 연주자로서 갖춰야 할 재질을 배웠다. 그는 이 코스에 참가한 120명 중 수료증을 받은 18명의 학생 중 하나로 한 달간 Michel Bourdongcle 교수에게 사사를 받아 브람스와 생상의 피아노 곡으로 심사위원 만장일치 만점 통과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현재 미국 보스턴에 있는 성일이는 Boston conservatory, Longy school of music 기악과 그리고 Berklee school of music 음악 경영학과에 합격한 상태다. 특히 Berklee 는 50% 장학금으로 입학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몇몇 다른 학교의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그는 장학금을 더 많이 주는 곳으로 갈 생각이란다. 여전히 그에게는 피아노를 계속하기 위한 재정적인 부담이 크다. 보스턴에 와 있는 동안 큰 준비없이 참가했던 ICA주최 제 4회 동경쇼팽콩쿠르 대상 수상은 그에게 특별한 기쁨을 선사했다. 이 대회는 3년에 한 번씩 주최 측인 ICA가 개최할 국가를 선정해서 열리는 쇼팽콩쿠르로, 예선, 본선, 결선으로 진행되고 모든 연주곡은 쇼팽곡으로만 참가해야하는 콩쿠르이다. 성일이는 이번 동경 쇼팽 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분 대상을 수상했고 전체 부분 중( 유년, 초등, 중등, 고등, 대학, 일반 부) 대상없는 3등을 차지했다. 보스턴에서도 시내로 나가려면 기차에 지하철에 버스에 2시간이나 걸리는 곳에 기숙하고 있고 친구의 연습실을 눈치보면서 사용해야 하는 가난한 음악가 성일이는 이번 대회를 위해 제대로 연습도 못했는데 이런 큰 상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그가 믿는 하나님 덕이라고 생각한다.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피아노 치는 것을 포기하려고 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러나 절망할 때 마다 새로운 이유들로 또 새로운 환경으로 일어서게 되곤 했다. 그중 가장 고마운 분 중 한분이 스승인 진향희 선생님이다. “레슨할 때 진 선생님처럼 무서운 분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스승님 포스가 장난 아니거든요...하하... 집안사정으로 피아노를 그만 두어야 할 상황이 왔을 때도 선생님이 절 더욱 북돋아 주시고 끝까지 레슨을 해 주셨어요. 저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재능이라고 하면 부모님, 주변 분들의 기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승님을 잘 만나게 제 재능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하”
“제가 좋아하는 피아노를 치고 작곡한 곡도 치면서 음악인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실력면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라는 꿈보단, 하나님이 세워주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김성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받은 사랑, 경험했던 어려웠던 일들, 그러면서 배운 것들을 멋진 교수가 되어서 후배들에게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세계 곳곳에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하나님을 위해 쓰고 싶어요. 그리고 그런 날이 꼭 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이것이 여러 번 포기하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피아노를 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지요. 보스턴에 올 때 한국에서 2번이나 비자를 거절당했어요. 군대를 가야할 나이고, 재정적인 문제도 있고, 부모님이 한국에 거주하지 않는 상태이고...등등 여러 이유로 거절을 당했지요. 최악의 조건으로 비자 발급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지요. 이번이야말로 피아노를 접고 군대를 가야하나 보다 생각했어요. 가족들 낙심도 컸고...그런데 3번째 극적으로 비자를 받았어요. 기적이지요. 제가 미국에 오게 된 하나님의 큰 뜻이 있을 것으로 믿어요“
만 스물두살의 성일이는 올해 1월 2월 한국, 일본 등 10번이 넘는 독주회, 협연 그리고 앙상블 공연을 했다. 여름에는 뉴욕, 보스턴, 시카고, 댈러스 그리고 캘리포니아에서 페스티벌 및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할 예정이다. 가을에는 학교 입학과 동시에, 보스턴, 뉴욕 그리고 한국에서 연주회를 가질 예정이고 무엇보다도, 여름엔 작년에 이어 조호바루, 쿠알라룸푸르 아트 페스티벌에 참가해 부모님도 뵙고 스승님도 뵐 수 있을 것 같다.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성일이.... 언젠가 ‘김성일’이라는 이름이 피아노와 함께 사람들의 입에 회자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말레이시아에서 유학생활을 열심히 한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할 때 한나프레스가 인터뷰해서 정리한 글입니다)(sskim520블로그)

이런 자료가 유학역사가 일천한 말레이시아로 유학오려는 후배학생들에겐 등대와 같은 좌표가 되고 또, 재학생들에겐 힘을 얻는 청량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