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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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컨설팅을 하면서 나눠드리고 싶은 글들 입니다.

`루저`와 `노스 페이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11-20 12:00
조회
235
"남자 키가 180센티 이하는 루저(Loser:패배자)"라고 생각한다는 한 여대생의 얘기에 전국이 떠들썩합니다.
작은 키의 아들을 둔 어떤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고 울었다고도 하고 또 몇몇은 소송을 한다고도 합니다.
저도 ‘루저’라 기분이 유쾌할 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여학생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말로 표현도 못하는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여학생이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까놓고 얘기해서 모두들 인정하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우리가 외모지상 공화국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키를 크게 하는 정체모를 약재와 시술이 성행하고 중매회사들 역시 아무리 좋은 스펙(직업,재산,성격등)이라도 키가 작으면 VIP 명단에 들수 없고 대머리는 아예 고려대상에서 조차 제외되는 게 우리사회의 불문율 아니던가요.
그리고 남자들의 여자에 대한 외모집착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습니다.
그 여대생 나이때 우리들도 ‘다른 건 다 봐줘도 여자 못 생긴건 용서할 수 없다’라고 루저 주제도 모르고 대못을 박고 다녔으니까요.

그렇다고 너무 자학하지는 맙시다.
이왕이면 키크고 잘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거야 동서고금의 보편적 정서입니다.
또한 신분사회가 폐지된 지금의 자본민주주의와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낯모르는 제3자에 대한 판단은 학력이나 재산 그리고 외모가 우선일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 아닙니까.

문제는 정도지요.
확실히 우리의 스펙 지상주의는 질과 양적인 면에서 심하긴 합니다.
얼마 전 등산을 가보니 등산복은 고급의류 업체들의 경연장이 됐더군요.
특히 ‘더 노스 페이스(The North Face)라는 옷은 앞가슴에 새긴 로고도 부족하여 등판에까지 로고가 있었습니다.
나는 해외생활을 하느라 한동안 그 상표의 진가를 잘 몰랐습니다.
언젠가 국내에 잠시 들르는 길에 처음 접하고는 무슨 글자를 저렇게 싸구려같이 크고 촌스럽게 새겼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야당 정치지도자의 아들이 군대 간다고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에도 그 브랜드가 보이길래 친구에게 물었더니 그게 엄청 비싼 브랜드라는 것이었습니다.
등산가는 것도 아니고 군대에 가는 데 왜 그 옷을 입었는지는 몰라도 그때부터 산속에서든 도시한복판에든 한국에 올때마다 지천으로 보이는 ‘노스 페이스’가 ‘노블 페이스’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겁니다.
한국이 세계 명품 브랜드의 테스트 마켓이 되고 세계 최고의 성형대국이 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명품 스펙을 위해 너도나도 악착같이 부정을 저지릅니다.
오래전부터 명품을 사기 위해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때론 자살까지도 한다는 뉴스가 종종 전파를 타곤 했지 않았습니까.
엊그제 방송에 보니 전국주유소의 95%가 기름을 도둑질하고 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눈을 씻고 다시 봤습니다.
아무리 봐도 5%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 5%만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5:95’
물론 주유소 관계자들의 반박이 있기는 하지만 이게 어디 주유소뿐이겠습니까.
쉴새없이 터지는 지방 자치단체장의 비리, 그림을 빙자한 국세청 고위직들의 부정, 그리고 얼마전 파문을 일으킨 군부대 납품비리....
알고보면 다 자신과 그 자식들의 스펙을 위해서 하는 일이겠지요.

거듭 말하지만 이쁘고 좋은 것을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다만 이번 ‘루저’ 파동에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표출하는 방식입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경제적으로는 우리가 선진국임이 분명하지만 결코 선진국이 될수 없는 이유는 예의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예의라고 하는 게 별겁니까.
개인이 아닌 타인과의 관계 아닙니까.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타인이라는 대상이 2인칭이 아니라 모르는 제 3자를 의미한다는 겁니다.
이해관계가 있고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는 한 없이 관대하고 낯 모르는 불특정 다수에게는 비아냥과 조롱을 일삼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런점에서 더 언짢은 것은 어린 여학생이야 그렇다 쳐도 자막까지 곁들여 히히덕거리는 방송권력들의 무식함입니다.

어찌보면 진짜 루저는 스펙에만 매달리는 소아병적인 의식과 타인에 대한 예의 부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선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