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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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컨설팅을 하면서 나눠드리고 싶은 글들 입니다.

님비족을 만드는 교육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1-21 12:00
조회
436
NIMBY(Not In My Back Yard). 화장장이나 쓰레기장 같은 공공혐오시설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우리 동네만은 안 된다는 집단 이기주의적 현상을 일컫는 조어(造語)다.
내가 새삼스레 님비현상을 언급한 것은 출근길 아파트 정문에 걸려있는 현수막 때문이다. 현수막의 내용은 지난달 문을 연 정문 앞의 이마트 때문에 먼지와 소음으로 못 살겠다고 피해보상을 하라는 내용이었는데 문구가 꽤 자극적이고 살벌했다.
나는 내심 국내는 물론 세계어디든 제 집 앞에 이만한 구멍가게가 어디있느냐고 고맙게만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나 문구도 문구지만 그들이 말하는 주장이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할인매장 덕에 아파트 가격이 상승한 것은 물론 고객들 차에서 나오는 매연이나 소음역시 결코 심각한 수준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존 대로변에 위치한데다 그 옆으로는 하루 수만대가 질주하는 경부고속도로도 지나간다. 또 주말을 제외하고는 썰렁한 상황에 시뻘건 글자로 흉측하게 내건 대형현수막은 우리사회의 심각한 님비현상이라고 밖에는 납득할 수 없었다.
아니 할인매장이 혐오시설은 아니니 이를 ‘떼법현상’ 이라고나 해야 할까.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은 기본권이 향상되고 급속한 경제발전에 따라 세계 각국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숙제다. 하지만 확실히 우리의 님비현상은 그 범위와 깊이가 자못 심각하다.
지난해던가, 서울의 한 동네에 실업계 학교가 이사를 온다고 하자 실업계 학교가 들어서면 동네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대하던 기사를 보며 너나 할 것 없이 혀를 찼다. 하지만 막상 그 일이 우리 동네의 문제라면 누구도 자신은 그렇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는 게 솔직한 나와 우리의 이웃들 아닌가.

이런 집단적 님비현상은 개인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간혹 교육상담을 하다보면 교육의 궁극적 목표나 방법에 대해서는 이성적이고 성숙한 태도를 취하던 고객들도 제 자식에게 대한 문제에는 한 순간에 돌변하곤 하는데 요컨대 다른 문제는 다 참아주겠지만 내 아이에 대한 문제만은 참을 수 없다는 논리다.
그렇다고 이런 현상이 급격한 경제발전에 따른 갑작스런 현상이라거나 핵가족 시대의 젊은 학부모들의 탓이라고 보기에는 의구심이 남는다. 어쩌면 내가 자라던 60,70년대 아니 그 전부터 면면히 이어진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전철에서 있었던 일이다. 운이 좋게도 나는 한 정거장 만에 자리를 꿰차고 앉아 신문을 꺼내들었다. 얼마 안 있어 80쯤 돼 보이는 할머니와 아들내외로 보이는 부부가 해외여행을 가는지 큰 여행 가방을 끌면서 들어섰다.
내심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거 아닌지 하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긴장을 했는데 마침 내 옆의 젊은 학생이 먼저 자리를 양보하는 바람에 할머니는 자리에 앉고 내 나이 또래의 아들내외는 서서 가게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기차가 정거장에 설 때마다 할머니는 안절부절 하지 못하시고 연신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 빈자리가 날 때마다 앞에 서 있는 아들에게 얘기를 했다.

‘저기 자리 비었다’, ‘아이고 저기 자리 났는데’

그러나 멀리 떨어진 사람들로서는 할머니의 안타까운 소리를 들을 수 없었기에 빈자리는 가차없이 다른 사람의 몫이 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민망스런 표정으로 아들이 ‘어머니 됐어요, 저는 괜찮아요’라고 만류했지만 할머니의 좌불안석은 계속되고 나까지 신경이 곤두섰다.
속으로 두 모자를 위해 그냥 내가 양보해줄 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아들이나 나나 나이도 비슷한데다 무엇보다 내 어머니에 대한 도리가 아닌 듯싶어 신문을 덮고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부모의 자식사랑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더욱이 아빠와는 달리 자신의 뱃속에 10달을 품었다 낳아야하는 엄마에게는 동물적인 본능까지 가세하여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점 또한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다.
모르긴 몰라도 한국 엄마들의 자식사랑은 세계 톱이라는 것이 정설인데 실제 아이의 사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파출부로 일하고 노래방 도우미로 나서는 게 결코 낯설지 않다.

하지만 자식에 대한 대가없는 사랑이 종종 맹목적인 집착으로 변질되는 것은 유감이다. 이것도 경제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구성의 오류(The Fallcy of Compisition)인 셈이다.
비유가 치졸하고 빈약하지만 위의 그 할머니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혼잡한 차 안에서 50줄인 제 자식을 앉히기 위한 숭고한 모정은 옳지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기본적인 예의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마비시킨 셈이다.
나아가 그런 맹목적인 새끼사랑과 교육이 최근 목도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심각한 님비현상과 떼법현상의 단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교육이라고 하는 것도 철저히 환경에 지배를 받는다는 점에서 단순히 교육자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가정,사회,문화 공동의 책임이다.
하지만 저마다의 본능을 억제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담당하는게 교육의 시작과 끝이라는 점에서 원인과 해결책 모두 교육외에는 대안이 없는게 현실이다. Teaching이 아닌 Education 말이다.

아이들을 한달 100만원에 육박하는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구구단을 외우게 하기에 앞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예절과 책임을 가르치는 게 급선무가 아닌가 싶다.
그래야 사사건건 이해득실에 따라 편을 가르고 대화도 배려도 없이 오직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로 치닫는 이 심각한 사회갈등을 치유하는 해결책이 될 것이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더 이상 님비교육은 안된다.

* 쓰고보니 혹 내 아파트 주민 누군가 이 글을 보고 공동체의 자격이 없다고 댓글 인민재판을 열어 추방운동을 벌이지는 않을지 은근히 걱정이 든다
김선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