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칼럼

운영자 칼럼

교육컨설팅을 하면서 나눠드리고 싶은 글들 입니다.

싸이코패스로 가는 사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2-09 12:00
조회
406
한 연쇄살인범으로 인해 ‘사이코패스’라는 생소한 용어가 전 국민의 새로운 연구과제로 떠올랐다.

사이코패스(Psychopath).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반사회성 성격장애라고 하는데 요컨대 생활 전반에 걸쳐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거나 침해하는 성격적 장애를 일컫는다고 한다.
대부분 열 다섯살 이전에 나타나는 반사회성 행동(행동 장애)이 성인기로 이어져 계속되는 증상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 및 권리를 무시 하고 오직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특징으로는 거짓말과 변명에 능하고 충동적이며 불안정하고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며 피해망상이 짙게 깔려있고 합리적이지 않은 변명들을 내세워 합리화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 사전적 의미를 읽어보는 마음이 무겁다. 연쇄살인이라는 행동으로 옮긴 그 살인범은 말할 것도 없고 어쩌면 우리사회가 집단 사이코패스의 단계로 접어든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애저녁에 대화나 존중과는 거리가 멀고 그렇다고 마지막 보루인 다수결의 원칙도 통하질 않으니 방법은 오직 결국 망치와 소화기에 의존 할수 밖에 없는 정치권이나 그럴때마다 말꼬리를 잡고 독설로 물고 늘어지는 논갹들 역시 그 배경에는 불신과 탐욕이 그득하다.
안방과 청소년의 영혼을 장악한 연예프로그램들이 쏟아내는 막말과 비아냥 역시 인기를 위한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이요, 폭력의 마취제다. 참을 수 없는 인신공격을 받아도 웃고 기꺼이 제물이 되어야 하는게 대중문화다.

학교나 가정은 또 어떤가. 잊을만하면 불거져 나오는 교사들의 무자비한 폭력 동영상이나 앳된 아이들끼리의 잔인한 폭력행위역시 마찬가지다.
쇼핑하듯 7명의 생명을 빼앗고 한 순간에 그 일곱 가족들을 증오와 절망의 지옥으로 몰아간 범인이 정작 제 새끼들을 위해서는 자서전을 쓰겠다고 하는 얘기나 내 새끼만은 기죽일 수 없다고, 자식문제만은 양보를 못한다고 올인하고 있는 우리의 교육상황 역시 극도의 피해망상과 차별주의가 혼재한 사이코패스 사회의 대표적 증상이다.

도대체 무엇에 대한 분노와 증오인가 ?
또 그 증오와 분오의 원인은 무엇인가 ?

작년의 촛불시위가 잦아드나 했더니 해가 바뀌자마자 이번에는 용산화재 사건으로 퇴근시간이면 80년대의 흉물스런 닭장차가 사무실 앞 도로를 점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경들이 저녁의 전투를 대비해 식사를 하는 모습을 종종 마주치는데 경찰제복은 흉물스럽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너무 어리고 맑게보이는 그들의 얼굴이 천진난만스럽기까지 보여 가슴 한구석이 저려온다. (하긴 내 나이가 50을 넘겼으니 그렇게 느낄만도 하네....)

그럴때면 작년의 교통정체로 겪은 호된 경험이 생각나 퇴근시간을 당기지만 어림도 없다. 급기야 며칠 전에는 시위로 인해 명동앞 대로를 폐쇄하는 바람에 만원버스 안에서 졸지에 난민이되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기도 했다.
중앙선을 넘어 노선에도 없는 남산을 돌아 본 궤도에 접어들자 이번에는 50대 우리 버스 운전기사의 증오와 분노를 들어줘야 했다. 본인도 되풀이되는 이 상황에 열을 받을대로 받았는지 승객은 안중에도 없이 동료와 핸드폰을 주고받으며 연신 ‘X팔, X같이’라는 욕설로 버스안을 공포분위기로 몰아갔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퇴근길의 신사숙녀들은 그의 일방적인 욕설에 말 한마디 못하고 대신 마음속으로 수치심과 분노를 쌓으면서 서서히 사이코패스가 되어갈 밖에 없었다.

30여 년 전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지성 ‘이어령’박사의 ‘흙 속에 저 바람속에’라는 책에서 ‘한국인의 전형(典形)’을 언급한 대목을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이 내용을 칼럼으로 썼던 적이 있었다.
6.25 전쟁 당시 이어령씨가 군용 짚차를 타고 캄캄한 밤중에 어느 시골길을 달리고 있는데 자동차 헤드라이트 속에 갑자기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고 한다. 갑작스런 사람의 출현에 당황한 운전병이 경적소리를 울리자 누군가 허둥거리며 수풀 속으로 들어가더란 것이다. 차를 급히 도로의 가장자리에 세워놓고 내려서 보니 겁에 질린 시골 노인부부가 손을 꼭 잡고 수풀 속에 숨어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단다.
자신들은 해를 끼치는 사람이 아니라며 노인부부를 안심시키려고 애를 썼지만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며 한사코 나오길 거부하던 그 모습에서 필자는 한국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30년이 흐른 세월에 기억도 희미하고 깊은 뜻을 이해할 나이도 아니었지만 그가 정의하는 우리의 전형적인 모습은 뒤뚱거리며 도망치는 소심함과 수풀속에서 나오기를 한사코 거부하던 완고함이 아니었나 한다.

그러나 90년 초에 나는 여의도 한 정류장에 목격한 운전자와 70노인의 증오에 찬 욕설에 충격을 받아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를 떠 올리며 이어령씨가 그려낸 50년대의 한국인의 전형은 사라지고 대신 괴물 리바이어던(Reviathan)이 새로운 한국인의 전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또 20년이 채 안된 2009년, 이제 나는 다시 한국인의 새로운 전형을 도처에서 목도하고 있다. 바로 ‘사이코패스’ 말이다.

방송에서는 집회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안치환이 노래하고 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고.
그래 나도 그 노래가사를 믿고 싶다.
그가 꽃보다 아름답다고 얘기하는 사람에 나도 들고 싶다.
정말 희망을 놓지 않고 싶다.

하지만 가슴 깊이 아주 깊이 두려움이 차오른다.
버스타기도 겁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겁이 난다.
사람을 만나야 목구멍에 거미줄을 치는 직업에 사람이 점점 두려워지니 그게 또 걱정이다.
더욱이 나를 닮아 초식동물인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우중충한 잿빛의 오늘 날씨만큼이나 무겁기만 하다.

빈 사무실에 앉아 이글을 쓰고 있는 토요일의 저녁, 사무실 앞은 다시 경찰들의 버스와 시위대의 함성으로 마비가 되기 시작한다.
싸우되 가슴속에 증오만은 심지 말아야 할텐데 번번이 팽생 지워지지 않을 독설들을 남발하니 정말 걱정이 아닐수 없다.

김선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