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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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컨설팅을 하면서 나눠드리고 싶은 글들 입니다.

치매가 왔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6-23 12:00
조회
434
장마철이 시작된 월요일 아침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출근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주머니가 허전하여 손을 넣어보니 핸드폰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직감적으로 버스좌석에 두고 내렸음을 알아챘다.
순간 식은 땀이 흘렀다.
내심 "핸드폰이 하루 없다고 뭔 일이야 있겠느냐" 그리고 "요즘 세상에 누가 분실한 핸드폰을 사용하겠느냐"며 애써 여유를 가지려 했지만 금세 내 자신의 부주의함에 화가 치밀었다.

사실 총각 때에는 하도 분실이 잦다보니 주민등록 재발급 난에 사진을 부칠 공간도 없을 정도로 산만했지만 나름대로 마음의 여유는 있었건 것 같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찾던 물건이 눈에 안보이기만 하면 초조해지고 괜히 죄없는 주위에게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부리나케 버스를 뒤 쫒으려 했지만 버스는 이미 나를 내려놓고 신호를 받아 무교동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 가서 버스회사에 분실물 신고나 하려다 보니 불편함은 둘째 치고 하루 종일 일손이 잡히지 않을 것이 뻔하다는 생각에 여간 혼란스럽지 않았다.
그때 문득 서울역을 돌아오는 버스를 중앙극장 앞에서 기다리면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즉시 발걸음을 돌렸다.
얼마 안 되는 거리지만 "혹 이놈의 버스가 빨리 지나쳐가면 어쩌나"하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뛰듯이 중앙극장 앞에 도착하여 등줄기로 흐르는 땀을 식히며 버스를 기다리자니 다시한번 나 자신이 한심했다.
생각해보니 버스에 핸드폰을 두고 내린 게 벌써 3번째 였다.
아니 핸드폰은 둘째치고 구두를 짝짝이로 신고 출근한 적도 1년 새 두 번이다.
색깔이라도 같았으면 몰라도 한쪽은 검은색에 다른 한쪽은 갈색이었다.
무의식 중에 현관에서 걸리는 대로 신고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서울에 도착해서 무심코 땅을 쳐다보니 오른발과 왼발 교대로 색이 틀렸다.
오른발 검은색, 왼발 갈색, 검은색 갈색...하낫 둘 하낫둘....

그날 저녁, 집에 도착하니 아내와 아이들은 현관에 짝짝이 구두가 놓여있는 것으로 이미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 있었다.
“어떻게 색깔이 다른 신발을 신을 수가 있느냐” 그리고 “그것도 두 번씩이나”하며 아내는 혀를 찼고 아이들은 쓰러질듯이 웃어댔다.
그리고는 아내가 심각하게 말했다.

“당신 치매 아니야”

버스를 두대 보내고 다행히 세 번째만에 잠시 잃어버렸던 핸드폰을 찾을 수 있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해보니 "핸드폰 분실한게 뭔 큰일"이라고 뒤뚱거리며 뛰어갔는지 쑥스러웠다.
그리고 인간사 모든 경쟁이 다름 아닌 집중력과 돌발상황에 대한 반응의 싸움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경우에는 사람이 나이가 들면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는 말은 거짓말인 것 같다. 단지 희망사항이라면 몰라도.

아 참, 얼마전 건강진단 받으라는 통지가 왔던데 이 참에 ‘치매’ 진단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장마철이 시작됐습니다.
다들 조금씩 여유를 가집시다, 하악 하악. (이외수씨의 책 제목 도용)
김선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