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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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컨설팅을 하면서 나눠드리고 싶은 글들 입니다.

미안해 마라, 원망도 마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5-26 12:00
조회
441
사무실 옆의 조계사에 차려진 노무현 대통령의 분향소를 다녀왔다.
5월의 싱그러운 녹음아래 그의 영정은 특유의 미소를 짓고 있었고 양편으로는 유서에 남긴 글이 적혀있었다.
"미안해 하지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그의 영정 앞에 국화를 놓고 절을 올렸다.

그날 23일 아침, 미국에서 온 누이를 집에 내려다주고 접어든 토요일의 고속도로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습관처럼 라디오를 켜니 여성시대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곧 속보를 전해드리겠다 라는 여자 아나운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 나오길래 또 무슨 사고가 났나 했는데

‘속보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자살 하였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10시 뉴스에서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방송은 녹음된 테이프를 트는지 다시 진행자들의 목소리와 음악으로 돌아갔다.
짤막한 그 속보는 마치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내마음을 강타했지만 그의 자살을 선뜻 받아들이기에는 미흡했다.
하지만 곧이어 10시 뉴스에서 들려오는 아나운서들의 다급한 목소리와 현장의 소음은 더이상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자실이 음독이나 목을 맨 게 아니라 추락사라라며 그것이 사고사인지 자살인지는 분명치 않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단번에 그가 자살을 택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머물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구나 하는 생각에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사실 지난달 검찰에 출두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의 성격으로 보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수모를 당하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상상을 했었던 것이다.

계속되는 라디오 생방송으로 자살경위와 행적이 밝혀지면서 나는 그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온몸을 내던지는 투신자살을 상상하노라니 두려움과 전율이 앞섰다.
그래서 달리는 차안에서 힘껏 비명을 질렀다.
“야~~~~, 이건 아니잖습니까”
한번으로는 답답한 가슴이 뚫리질 않았다.
서, 너 차례 외마디 같은 고함을 질러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가 왜 자살을 택했을까”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언론과 현 정부의 보복이 억울해서, 아니면 수치심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증오 때문이었을까.
누구보다 강한 의지와 열정을 품은 그가 검찰과 언론의 압박을 이겨내기가 그토록 힘들었을까.
아니 진정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어쩌면 외로움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 재임시절에도 문득문득 나는 격한 감정속에 드리워진 외로움을 느끼곤 했었으니.
나아가 그의 이번 자살이 역사를 전진시킬 것인지 아니면 후퇴시킬 것인지에 대한 걱정도 이어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 인간의 죽음 앞에 누구도 예의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장례식이 끝날 때 까지는.

하지만 저녁 무렵 집에 돌아와 진보도 보수도 아니고 친노도 반노도 아닌 중학교 1학년인 아들 녀석의 말은 내 희망을 부숴버렸다.
‘아빠 노무현이 죽었대’라며 희죽거리며 얘기하는게 아닌가.
순간 나는 우리사회의 심각한 언어와 소통문제를 절감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임마, 어른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게 아냐,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해"
하긴 작년 광우병 파동 때에도 누구한테 배웠는지 말끝마다 ‘명박이’,‘쥐박이’ 운운하는 것에 호되게 야단을 쳤지만 그때뿐이었다.
아들놈에게 소리를 지르고 난후 가만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 나이때라면 아들녀석처럼 그랬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최근까지도 영삼이, 대중이 하며 상황에 따라 흔들거렸으니.

그렇다. 아무리 전직대통령이라고 해도 혈육이 아닌 타인의 죽음을 엄숙하게 받아들여할 의무는 없다.
더욱이 이제 중학교 1학년인 아들놈에게서야 말해 무엇하랴.
단지 죽음의 의미를 가르칠 수는 있을것이다.
즉,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우주이며 죽음은 곧 그 하나의 우주가 사라지는 것임을.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각자의 마음으로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때마침 TV에 비치는 측근들과 지지자들의 격앙된 모습과 빈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편가름 역시 내게는 불편했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그가 원했든 원치 않았던 간에 우리에게 신화가 되었다.
그 신화에 대한 해석과 교훈은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 되어 말과 글로 먹고사는 자들마다 다양한 해석을 봇물처럼 쏟아낼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형편과 생각에 따라 우리사회는 다시한번 요동을 칠 것이다.
아니 이미 시작되고 있다.

분향을 마치고 내려오니 때마침 법회가 열리는지 반야심경을 독경하는 소리가 조계사 경내에 울려 퍼졌다.
‘반야바라 밀다심경 관자재보살.....색즉시공, 공즉시색......’
그리고 대웅전 앞으로 노란 리본에 글을 써 매단 줄이 있었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한참을 망설여 이렇게 적어 놓았다.

“이제 증오도 보복도 분열도 없는 천국에서 부디 왕생극락 하소서“
김선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