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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이야기(50) 초6 마치고 와서 HELP대학 전액 장학금 받는 최승훈

작성자
SS Kim
작성일
2018-03-02 09:50
조회
536
우리아이들 인터뷰 (50)-최승훈

“노력이 나를 만든다”
좌우명은 정신일도하사불성!

헬프대학교에서 외국인 학생으로 최고 금액의 장학금을 받고 A레벨(영국 대학입학시험)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최승훈 군은 다음 주(3월 29일)에 있을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훤칠한 키에 준수하게 생긴 승훈 군은 기러기 가족으로 형과 어머니와 말레이시아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다. IGCSE O-레벨에서 A+4개, A 7개, B 1개의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또한 텐비국제학교장상을 수상하고 텐비국제학교 학생회장, 마즈국제학교 시니어 대표 등을 했으며, TWUN 2012에 에콰도르 대표로 참가했다. 한편 드럼 연주 실력도 뛰어나 교내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삶의 목표가 확실한 승훈 군은 미래의 꿈을 위해 웅비하고 있다. ‘정신일도하사불성’이라는 ‘정신을 집중하여 노력하면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성취할 수 있다’는 성어를 좌우명으로 여기며 생활하고 있다. 낙천주의자이자 리더로서의 기질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는데 현재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타인에 대한 배려가 깊고 의리가 있어 당연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좋으며 사교성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어느덧 말레이시아에 온 지 6년이다. 매일 말레이시아에 처음 발을 디딘 설렘을 가지고 보람된 생활을 하고 있다. 매사에 적극적인 승훈 군은 일찌감치 해외로 나와 공부하고 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뉴질랜드로 조기 유학을 떠났다. A, B, C 알파벳을 떼고 바로 뉴질랜드로 갔기 때문에 현지 생활에 적응해야 했던 초반이 힘들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을 많이 사귀면서 교내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한국인 학생들이 많지 않아서 영어로 말하기와 듣기가 빨리 향상됐어요. 그리고 이때 인종차별이 심해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친구들이 어린 학생들이 놀리는 것을 응징해 주기도 하고 보호해 줬어요. 아직도 그때 뉴질랜드 친구들과 연락하고 있어요. 초등 5학년 때는 도서관의 사서 대표로 활동했어요. 실은 6학년이 돼야 할 수 있는 거였는데 4학년부터 사서로 활동해 5학년 때는 사서 대표로 올라갔어요.” 승훈 군은 5학년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해 4학년 2학기로 편입하면서 적응 기간을 가졌다. “힘든 시기를 넘을수록 제가 좀 발전하는 걸 느꼈어요. 사람들하고 원활하게 대화하는 것이 늘었고 쉬워졌어요.” 다시 5학년 때 강북에서 강남으로 전학을 간 승훈 군은 6학년 때 부회장에 당선했다. 빨리 친구들을 사귀며 학교생활에 적응해 나갔는데 6학년 2학기 때 짧게 사춘기를 겪게 됐다. “피시(PC)방도 가고 참 나쁜 짓도 많이 했어요.”

6학년을 마치고 바로 말레이시아로 온 승훈 군은 마츠국제학교에 입학해 다니게 됐다. 8학년 때는 마즈국제학교에서, 9학년 때는 텐비국제학교에서 반 대표를 맡았다. “두 학교가 굉장히 달라요. 마즈학교는 아랍, 인도 학생들이 많았고, 텐비는 거의 중국인과 혼혈인 학생들이 많은 중국학교였어요. 중국 애들이 노는 거 같은데도 시험 기간이 되면 놀던 애들도 공부해요. 처음에 성적표 받고 많이 놀랐던 게 제가 보기에는 중국 애들이 노는 것 같은데 성적이 좋은 거예요. 그게 참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승훈 군은 텐비국제학교에서 적응하면서 친구들이 하는 공부법으로 바꿨다. 평상시 수업 들을 때는 열심히 들었고 시험 기간 때는 집중적으로 반복 학습해 성적이 조금씩 올라갔다. “10학년 때는 학생회장에도 출마해 인터뷰, 에세이, 선생님 추천서를 통해 당선됐어요. 텐비국제학교에서 공부했던 게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거라고 생각해요.

” 작년 11월에 테일러스 대학에서 주최한 모의유엔(MUN: Model United Nations)에 참석한 승훈 군은 “정말 쟁쟁한 아이들이 많았어요. 10살쯤 돼 보이는 어린 학생이 반박을 정말 잘했어요. 이때 자만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계속 발전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해서 유엔 클럽에서 재정 관리까지 맡게 됐어요. 아쉽게도 할 일이 많아지고 공부에 집중을 못하게 돼서 활동을 못하다가 이번에 헬프 대학이 주최하는 모의유엔에 참가해 총괄 기획․진행을 맡게 됐어요. 3일 동안 진행되는 대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책임지게 되거든요.” 승훈 군은 모의유엔이 4월에서 7월로 연기되자 학생회장에 도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어려서부터 해외에서 공부한 승훈 군이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힘들었던 시기는 “잘했던 점은 뉴질랜드에서 초등 5학년 때 사서 대표직을 맡아 활동한 것과 한국에 귀국해서 잘 적응한 점을 들 수 있어요. 또 말레이시아에서 다양한 여가 활동을 통해서 많은 경험을 했고요. 힘들었을 때는 뉴질랜드에서 인종차별 때문에 힘들었고 한국에서 잠시 사춘기로 방황했던 점을 들 수 있어요.” 늘 학교생활을 충실하게 하고 있는데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는 “성적표를 받았을 때, 후회 없이 노력했다는 성취감을 들 수 있어요. 특히 텐비국제학교에 다닐 때, O레벨에서 영어와 영문학에서 에이플러스(A+)를 받았어요.”

헬프대학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니는데 헬프 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집에서 택시로 10분 거리로 통학이 편해요. 에덱셀(Edexcel) 보드 중에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어서 선택하게 됐어요. 에덱셀(Edexcel) 시스템은 시험을 다시 치를 기회가 주어진다는 거예요. 만약 생각한 점수보다 안 나올 경우를 생각해서 재시험을 치를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 헬프대학을 정했어요.” 현재 3명의 학생에게 영어 튜션을 하고 있는 승훈 군은 영어 공부를 잘하는 비결에 대해 “뉴질랜드에서 방학을 보낼 때 현지 친구네 집에서 같이 놀면서 자고 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리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한 달 전부터는 영어 단어도 스파르타식으로 많이 외우고 그래머 뉴스(Grammar News) 문법책 한 권을 사서 4~5번 봤어요. 노트에 모든 문제의 답을 적고, 그 다음에 그 방법을 계속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까 문법에는 자신이 생겼어요. 그런 게 공부가 된 거 같아요. 그리고 매일 에세이를 썼어요. O레벨이 임박하기 전에는 250~300자의 에세이를 매일 썼어요. 나중에는 책으로 만들었어요. 엄마의 호주 친구가 제 에세이를 보고 틀린 것을 정정해 주셨어요.” 한때 승훈 군 어머니는 두 아들과 랭귀지 하우스라는 어학원에 다녔다. 학원 역사상 처음으로 두 아들과 함께 학원에서 공부하는 기록을 낳았고 좋은 성적으로 영어 공부를 끝내, 지금은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사귀며 기러기 엄마로 자녀들을 잘 키우고 있다.

기러기 아빠로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전하고픈 말로 “아버지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세요. 제가 세계로 뻗어 나갈 기회를 마련해 준 분이시며, 매일 밤 하루 일과가 어땠는지 이메일을 주고받아요. 제가 아무리 피곤해도 이메일은 꼭 보내고 자거거든요. 아버지는 제 정신적 지주세요.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한편 부모님께 감사한 것은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조금 방황했는데 지켜봐 주시고, 잘 이끌어 주신 것에 대해 부모님께 감사해요. 나중에 말레이시아에 와서 잘못한 것을 말씀드렸을 때 용서해 주시더라고요. 앞으로 더 좋은 아들이 돼서 효도할 테니 기다려 주세요. 사랑합니다.”라며 부모님에 대한 깊은 사랑을 표현했다.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이 들 때는, “말레이시아가 2020년까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성공적인 모델로 벤치마킹하고 있잖아요. 특히 그런 부분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해요.” 말레이시아에 와서 철이 들었다고 말했는데 “부모님께서 우리 형제에게 투자하시는 돈이 많은데 그 돈을 낭비할 수 없고, 또 외화 낭비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님의 은혜에 꼭 보답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인생의 목표가 생기더라고요. 어차피 같은 인생을 살 거면 남들보다 한발 앞서 멋지게 살고 이왕에 할 거면 제대로 한번 해 보자라는 목표를 갖고 살고 있어요.” 닮고 싶은 롤 모델에 대해서는 “2008년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에 세계 부자 1위로 선정된 워런 버핏처럼 성공하고 싶어요. 현재는 3위이고 빌 게이츠와 더불어서 기부를 많이 하는 위인이세요. 한 자동차를 20년 넘게 타고 집도 검소하게 살아요. 성공해도 자만하지 않고 검소하게 기부를 하는 모습이 본받을 점이라고 생각해요.” 어머니랑 사이가 특별한 승훈 군은 용돈 모아 어머니 생일 선물로 기쁨을 드리는 것은 물론이요, 부모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일에 감동과 함께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하는 데 선수다. 지난해 부모님 결혼 20주년을 맞아 한국 강남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가족사진을 멋지게 찍었다. 웬만한 연예인 가족사진 부럽지 않게 말이다.

비록 기러기 가족으로 떨어져 있지만 날마다 아버지와의 사랑을 확인하며 항상 부모님의 기대에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노력의 노력으로 성공을 다짐하고 있다. 행복하고 모범적인 가정으로 각자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가족. 부모님의 결혼 20주년을 맞아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가족의 사랑을 더욱 굳건하게 한 승훈 군 가족은 비록 아버지와 떨어져 생활하지만 가족이 함께하는 사랑, 행복이 뭔지를 잘 안다. 승훈 군 어머니는 말레이시아에서 남편, 차, 가정부 없이 지낸다. 이곳에 나온 부모 대부분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데리고 오는 일이 큰일인데 그 큰일을 내려놓았다. 여러모로 경제적으로도 알뜰살뜰하게 모범을 보여주며 살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유학생활을 열심히 한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할 때 한나프레스가 인터뷰해서 정리한 글입니다)(sskim520블로그)

이런 자료가 유학역사가 일천한 말레이시아로 유학오려는 후배학생들에겐 등대와 같은 좌표가 되고 또, 재학생들에겐 힘을 얻는 청량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