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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야기(47) 중2때 와서 홍콩대, 멜번대, 맨체스터대학 갈까 고민하는 신영철

작성자
SS Kim
작성일
2017-12-01 09:50
조회
402
우리아이들 인터뷰 (47)-신영철 군

오늘 ‘우리아이들’칼럼의 주인공인 영철이의 아버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외국 부동산 투자 붐이 한창일 때 친구들과 함께 열대나라인 말레이시아에 투자 목적으로 몽끼아라에 건축중인 콘도미니엄 한 채를 분양 받았다. 골프도 치고 투자도 하자는 목적으로 구입한 부동산에 관련된 서류문제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회사일로 해외 출장이 잦았고 영어에 큰 어려움이 없던 영철이 아버지는 함께 부동산을 구입한 친구들의 부동산 구입 서류 일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은행 융자를 받는 일부터 시작해 중도금은 언제 지불해야 하는지 필요한 서류들은 무엇인지 부동산 구입자들에게 개발업자들이 제공하는 것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등등, 이를 위해 자주 말레이시아를 드나들게 되었고 이곳에 영어로 가르치는 다양한 국제학교뿐 아니라 서구 유수대학과의 연계 프로그램 등 말레이시아 교육시스템이 우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한국에서 외고 입학을 위해 준비 중이던 딸과 초등학교를 마친 아들을 데리고 전 가족이 말레이시아로의 이주를 결심한 것은 이와 같은 말레이시아의 교육시스템 때문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자녀들의 더 나은 장래의 삶을 위해 쉽지 않은 결정을 한 영철이 아버지는 이곳에서는 새로운 삶을 위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며 계획하고 왔다.
영철군은 말레이시아로 간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내키지 않았단다. 저개발 국가일 것이라는 선입견과 영어로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2008년 7월, 한국에서라면 중학교1학년이어야 할 나이에 페어뷰국제학교에 8학년 3학기에 입학했다. 학년을 낮춰 입학하고 싶었는데 제 나이인 8학년 마지막 학기로 입학을 한 것이다. 학년말 시험을 고작 2주를 남긴 시기였다. 8학년을 다시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 달여의 8학년이 끝난 후 9학년 정규 반으로 진급이 됐다. 9학년에는 한국 학생들의 대부분이 영철군보다 나이가 많은 형들이었고 한국에서 배운 영어가 적용이 안 되는 실제상황의 영어 수업은 영철군에게는 너무 힘들었다. 아버지 결정으로 이곳에 오게 된 것이 후회스러웠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한국 학생들이 비교적 수월하게 적응한다는 수학시간도 초등학교 수학 실력의 영철군에게는 기본을 배운 적이 없어 이해가 힘들었다. 본인 수준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영어 문장도 너무 많았다. 영어를 잘하지만 자기보다 늦은 나이에 온 누나도 적응하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동생인 자신을 따로 시간을 내서 가르쳐줄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항상 이들 남매에게 과정은 최선을, 결과는 승복을 가르치는 분 들이었다. 과정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자신들의 교육을 위해,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 주기 위한 부모님의 쉽지 않았을 결정에 영철은 포기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면 영어 담당이었던 담임선생님에게 보충수업을 해 달라고 졸랐다. 이해가 되지 않는 영어문장이 왜 이렇게 만들어 질 수 있는지를 끈질기게 묻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은 모두 일단 외우기 시작했다. 한 문장을 외우고 자신이 만들고 싶은 문장은 단어를 대체해 가면서 만들게 되면 적어도 문법적으로는 그리 틀리지 않는 영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러나 시간이 가도 영어가 나아지는 것 같지가 않았다. 뭔가 노력은 하는데 실력이 늘지 않는 것 같은 절망감도 맛 봤다. 그러나 안 되는 건 없는 법이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영어 자막을 열심히 외웠다. 대부분 영어 초보자들이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영어를 배운다는데 영철이의 영어 배우기는 거꾸로였다. 한국말 대사를 들으며 그것을 어떻게 영어로 표현하는지를 번역되어 나온 영어 자막을 보면서 배운 것이다. 드라마의 상황에 따른 실용영어를 제대로 배운 것이다. 적어도 방송에 나올만한 자막은 실력 있는 전문가가 상황과 어감을 살려서 번역했을 것이니 말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한국 방송만 본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 영철군은 주장한다. 이해안되는 책을 10시간 들어야 보느니 스트레스도 풀고 재미있기도 한 한국 방송을 보면서 영어를 배우는 것이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미국 드라마도 열심히 봤다. 그것은 발음을 위해서였다. 영철이는 영어는 문법이 조금 틀리더라도 자신 있게 말하고 그 무엇보다도 발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아이였다. 멋진 원어민처럼 발음하고 싶어서 열심히 따라 했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다. 영어 문장이 무섭지가 않게 되었고 하고 싶은 말은 만들어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항상 앞서가고 있는 누나도 그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오 레벨에서 8개의 A를 기록하면서 현재 홍콩 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누나는 영철이에게는 항상 롤 모델이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며 도전을 어려워하지 않는 영철군의 성격도 이곳에서의 적응을 수월토록 했다. 아직 영어를 제대로 구사할 줄도 모르는 9학년 때 영철군은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프리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프리펙이 입고 있는 조끼가 멋있어 보인 것이 프리펙을 하고 싶은 이유였단다. 또 프리펙들이 선생님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부러웠단다.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하는 진지한 그를 신통하게 여긴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그는 프리펙이 되었다. 당시는 몰랐는데 9학년에서 시작된 프리펙 생활은 졸업 때까지 지속되었고 그는 프리펙 보드에 참여하게 되면서 리더십이 무엇인지, 책임이 무엇인지, 함께 일하는 것이 무엇인지 등 매우 중요한 것들을 배우게 되었단다. 후에 A레벨이 끝난 후 영국과 호주 등 대학 입학원서를 제출할 때 4년간의 프리펙이 중요한 이력이 되기도 했다. 영어가 점점 재미있어진 영철군은 10학년 때 11학년에 치러야 하는 오레벨에서 미리 영어를 치렀다. 자신의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어진 것이다. 유학 온 지 3년 만이었다. 결과는 B, 너무 기뻤다. 자신감이 생기고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제 다른 과목에 전념하면서 오레벨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영어는 영철군이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되었다.

오레벨 후 대학에서 심리학을 하면 흥미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학, 경제, 심리, 회계 과목을 선택해 A레벨을 치렀다. 그런데 막상 공부를 하다 보니 심리학이 자신이 기대했던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경제가 재미있었다. 거시 경제를 배우고 경제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등을 공부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경제 쪽으로 전공을 결심하고 A레벨 결과가 나오자 영국과 호주, 그리고 누나가 공부하고 있는 홍콩대에도 원서를 제출했다. 현재 영철군은 호주와 영국에서 이미 오퍼레터를 받았고 홍콩대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 말레이시아에 올 때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결과들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교수들이 즐비한 맨체스터대학에서도 오퍼를 받았고 시드니대학이나 맬버른대학에서도 입학 허가서가 왔다. 그저 부모님 따라와서 영어나 좀 배우지 하고 생각했지, 세계 유수대학에 입학을 선택해야 하는 자리에 오게 될 줄이야 정말 몰랐단다.

영철이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명확하다. 대학원은 안 간단다. 자신이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거다. 홍콩대가 올해 입학생부터 4년으로 늘어나는 통에 3년으로 학부가 끝나는 영국도 생각하고 있단다. 비용이 많이 들어 영국유학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누나와 같이 공부하고 싶은 홍콩대에서 4년을 공부하려면 조금 학비가 비싸도 3년에 마칠 수 있는 영국이 낫지 않을까 싶단다. 대학 1년을 공부하고 군대를 간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면 해외에서 경제학도이니 만큼 금융이나 투자회사 등에서 일하면서 경력을 쌓다가 한국으로 들어가고 싶단다. 부모님의 현명한 결정으로 확장된 삶을 살게 되었다는 영철이의 앞날은 이제 모두 자신이 결정해서 이루어지게 될거다. 지금까지의 노력은 자신의 능력의 60%정도에 불과한 것이라는 그는 대학에서 그야말로 100% 최선의 삶을 살고 싶다. 즐겨 이용했던 잘란툰라작에 위치한 말레이시아 국립도서관 한 책상에서 우연히 발견한 낙서로 쓰여진 글 “공부는 인생의 십분의 일도 안 된다. 그런데 십분의 일도 안 되는 공부도 못한다면 너는 앞으로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그는 이 글을 마음에 새기며 공부했단다. 영철군이 후배들에게 전하는 팁!

‘어느 국제학교든 한국 학생들이 많다. 같은 한국인끼리 어울리는게 당연하지만 많은 경우 한국 아이들끼리 몰려다니면서 공부는 뒷전으로 가는 일이 흔하다. 영어를 배운다고 외국인 친구만을 사귀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이곳에 왜 왔는지? 게임방이나 몰려 다니려고 말레이시아에 왔는지? 생각을 하고 살면 좋겠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자. 한명 한명이 다 인재이고 한국의 대사라고 생각하자. 노력하면 기대한 것 보다 더 한 것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말레이시아다. 이 좋은 교육의 찬스를 놓치지 말고 후회없는 유학생활이 되도록 하자. 남을 위한 봉사활동을 정기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꾸준히 해라. 남을 도와주면 오히려 자신을 돌보게 되고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된다. 단순한 스펙이 아닌 봉사활동을 하면 좋겠다. 내가 인상깊게 만날 글귀처럼 인생에서 공부는 단지 10분의 일도 안되는 것이다. 이것을 게을리 한다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최선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말레이시아에서 유학생활을 열심히 한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할 때 한나프레스가 인터뷰해서 정리한 글입니다)(sskim520블로그)

이런 자료가 유학역사가 일천한 말레이시아로 유학오려는 후배학생들에겐 등대와 같은 좌표가 되고 또, 재학생들에겐 힘을 얻는 청량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