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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이야기(26) 말레이시아 1년후 국립대만대 입학한 이건웅

작성자
SS Kim
작성일
2017-07-01 09:50
조회
425
우리아이들 인터뷰(26)-이건웅

“노력하면 안되는 일이 없어요! 10년 앞이 보이지 않으면 일을 안 저질러요”

국립대만대 경제학부 학생, 전문 통역사, 연예기획사 소속회원, 엔터테인먼크 회사 사장 그리고 착한 아들

이건웅. 우린 이 아이의 이름은 언젠가 미디어를 통해 다시 듣게 될 수도 있다. 그는 1992년생이니 현재 19세다, 말레이시아 대만학교(Chinese Taipei School) 12년 수학, 고3때 전교회장 역임. 중3때 대만에서 열린 예비가수 선발대회에서 3만 명의 응시자를 제치고 톱 20까지 올라간 아이. 16살 때 직원 10명을 둔 한국어, 중국어, 영어 전문 통번역회사 ITC 설립, 2011년 말레이시아 국립대만대 경제학과 입학 확정, 현재 서울대 합격여부 대기상태, 현재 NUEntertainment 사 사장

대학 가서 놀려고 미리 공부하고 있다는 건웅이를 ‘더프레스티지보드’에서 만났다. 나름대로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그가 국립대만대와 서울대 입학신청 서류의 하나로 준비한 토플 첫 시험에서 형편없는 점수로 고민이 되었을 때 도움을 준 학원이란다. 이곳에서 공부한 후 토플점수가 ‘귀신이 곡할 정도로’ 신기하게 무지 큰 폭으로 올랐다고 학원을 자랑한다. 웅이가 아버지의 직장 발령으로 이곳 말레이시아에 온 것은 유치원을 막 마친 1999년이었다. 미래를 생각한 아버지의 선택으로 당시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이 다니던 국제학교가 아닌 수방에 있던 대만학교에 입학했다.

첫 학교였고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언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단다. 금방 잘 적응했지만 대만 학생들 속에서 당시 거의 유일한 한국아이로 따돌림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 어려웠다고 회상한다. 현재 대만학교에는 약 60여명의 한국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어 규모가 작은 이 학교에서 외국인으로는 한국학생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선 중국 표준어인 만다린으로 공부하고 본토 중국에서 사용하는 간자체가 아닌 우리나라처럼 정자를 사용한다. 캐나다와 영국 등 원어민교사들로 인해 영어를 배우는 것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건웅이는 중국어, 영어, 한국어를 능란하게 구사했으니 학교에서 얼마나 필요로 하는 아이였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한국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한국 학부모님들을 위한 통역을 비롯해서 학교 이벤트 행사가 있을 때 마다 MC를 도맡아서 했다.

중3때 ‘슈퍼스타 K’와 같은 대만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님께는 방학을 이용해 대만 친구네 놀러가는 것으로 허락을 받았다. 그리곤 3만 여명이 참가한 TV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경선을 통해 2개월에 걸쳐 최종 20명에 들었다. 혼자 좋아서 부르던 노래와 추던 춤이 인정을 받게 되니 기분이 엄청 좋았다.(중국노래를 불렀단다) 경선이 계속되면서 내 노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경연장에 와서 응원도 해 줬다. 인정받는 느낌, 사랑받는 느낌. 연예인이 되면 갖게 되는 기쁨이 바로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방학이 끝나가고 있었다. 말레이시아에 계신 부모님께 사실대로 말씀을 드렸다. 결정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디서 이런 아이가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 부모님은 먼저 공부를 끝내야하지 않겠냐면서 돌아오라고 하셨다. 본인도 스스로 생각해 보니 지금 가수로 뜬다고 해도 자긴 겨우 중졸이 아닌가... 데뷔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웅이는 자신을 ‘멀리 내다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10년 뒷일을 생각하고 일을 저지른단다. 방송국에 사정을 설명하고 나중에 돌아오겠다고 말한 후 말레이시아로 귀국했다. 그에게는 자신에게 연예인으로의 끼와 재능이 있음을 확인해 준 사건이었다.

​“공부는 학생의 기본이지요. 공부를 잘 해야 어른들이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시잖아요” 우등을 놓치지 않은 건웅이는 고1때 학교에 요청을 했단다. 춤추고 노래하는 그룹을 만들테니 학교의 공식 행사 때 마다 이 팀을 초청해 주고 학교 동아리활동으로 인정해 달라고 했다. 그동안 무엇이든 하겠다고 하면 해 내고야 마는 건웅이는 이미 학교에선 유명한 아이였다. 흔쾌히 허락을 받아 만든 팀이 학교 이름(Chinese Taipei School)의 이니셜인 CTS를 이용한 ‘Crystal Tough Spark’다. 건웅이를 포함해 단 3명으로 시작한 이 그룹은 그가 졸업한 후에도 10여명으로 이루어지는 이 그룹에 가입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인기 동아리로 자리 잡았다.

대만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행사의 MC로 활약하고 이벤트 회사에서 통역을 구할 때 마다 전문 통역사로 불려 다녔다. 그런데 이벤트 회사들이 통역을 구할 때 한명이 아니라 대부분이 여러 명을 동시에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아 통역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소개해 주는 일을 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통역사를 한곳에 모아놓고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한국어, 중국어, 영어를 전문으로 통역해 주는 회사가 제대로 없는 상태이니 광고만 제대로 하면 먹혀들어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가 고1때 차린 회사가 ITC다. 한국말을 엄청 잘하는 말레이 아저씨를 비롯해 10여명의 전문 통역사를 갖춘 이 회사는 한국 스타들의 말레이시아 이벤트의 통역을 거의 점령했다. 한번에 필요로 하는 통역사들을 모두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스타들이 오면 바로 회사로 연락이 왔다. FTIsland, 슈퍼주니어, 비스트, Seven 등이 방문했을 때 통역을 담당했고 9월에 말레이시아를 방문할 예정인 김현중씨의 통역도 할 예정이다. 건웅이는 최근 자신의 통번역전문회사 ITC를 통번역과 함께 K-pop을 제공하는 NUEntertainment 사로 이름을 바꿨다. K-Pop이 뜨면서 K-Pop공연을 찾는 곳이 많아져서 그룹을 만들어 한국홍보대사 역할을 할 계획이다. 한인회 행사나 각종 한국 관련 행사에 특별손님 격으로 공연도 할 생각이다. 그는 현재 Halo Music이라는 대만, 홍콩, 중국, 말레이시아에서 활동하는 연예기획사의 소속회원이다. 2년 전 이곳에서 회원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응시해서 오디션에서 선발된 3백여 명 중 정식 계약을 하게 된 3명안에 뽑혔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을 못하면 연예계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만의 서울대인 국립대만대 경제학과에 합격이 되었다. 또 한번 결정을 해야 했다. 10년 후가 보이지 않으면 어떤 일도 저지르지 않는다는 건웅이는 일단 대학을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연예인으로서의 꿈은 후배들을 키우는 것으로 대신 할 생각이다. 서울대에 원서를 넣었는데 서울대에 합격을 하면 한국으로 들어가는 것도 고려중이란다. 기자는 건웅이가 공부도 하면서 이 모든 일을 동시에 해 나갔다는게 신기했다.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어린 나이에 회사를 만들어 돈도 잘 벌고.... 신기한 종류의 아이임에는 틀림이 없다. 본인의 단점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장점이 될 수도 있는 단점을 말한다.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요. 그리고 한번 시작하면 끝을 내야 직성이 풀리지요. 일단 맡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성사시켜야 되고 성공해야 되지요. 일에 몰두하면 진을 빼요. 그래서 몸이 견디지를 못해요” 학교다니는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 치레를 했던 전력이 있는 그는 자신이 스스로를 너무 피곤하게 몰아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집념과 열심, 노력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만족 때문에 19살의 짧은 인생이지만 평범치 않게 살아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에게는 안 되는 일이란 없다. 친구들에게도 늘 권고한단다. 노력해서 안 되는건 없다고...죽을 각오를 하고 매달리면 되게 되어있다고... 오랜 인생을 산 어른같은 소리를 한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주저함없는 그의 대답은 ‘가족’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외동아들 건웅이는 현재도 부모님이 계신 가족이 가장 소중하고 나이가 들어도 가족이 가장 소중할 것이라고 답한다. 친구들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고 싶다고들 하지만 자기는 평생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단다. 부모님의 바른 투자로 자기가 축복과 많은 기회를 잡게 되었단다. 외국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된 것도 복이고 그래서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 보다는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 것도 복이라는 이 아이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건웅이의 부모님이 부러웠다.

(말레이시아에서 유학생활을 열심히 한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할 때 한나프레스가 인터뷰해서 정리한 글입니다)(sskim520블로그)

이런 자료가 유학역사가 일천한 말레이시아로 유학오려는 후배학생들에겐 등대와 같은 좌표가 되고 또, 재학생들에겐 힘을 얻는 청량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