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성공기

유학성공기

유학생활의 팁 과 경험을 공유하는 곳 입니다. 회원이신 분들은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유학이야기(27) 12년간 말레이시아 후 이화대로 간 황유정

작성자
SS Kim
작성일
2017-12-01 09:50
조회
384
우리아이들 인터뷰(27)-황유정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유정이의 성공적인 한국 유학 생활기!

“이제 나도 어엿한 한국이지요!”

부모를 따라 말레이시아에 들어와 생활하다 한국 대학에 입학할 경우, 특례 입학이라는 것이 있다. 외국에서 수학한 연수에 따라 3년, 6년, 12년 특례 혜택을 받아 한국 대학으로 입학하는 것이다. 12년 특례의 경우 초중고 학업을 모두 외국에서 마쳤기 때문에 한국 대학에 입학을 하더라도 거의 외국인이나 다름이 없는 학생이 한국 문화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12년 특례의 경우 한국 명문 대학으로의 입학이 비교적 수월함에도 불구하고 입학 후 적응 문제 등으로 오히려 미국이나 호주 등 다른 나라 대학에 입학하는 경우도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공부하고 이화 여대에 입학해 3년이라는 시간을 잘 적응해 온 유정이의 이야기를 이번 호에 소개한다.

1990년생인 유정이는 쿠알라룸푸르에서 태어났다. 11년 전 과정을 세이폴국제학교에서 공부한 유정이의 한국행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길 원하는 부모님의 소망 때문이었다. 특례 입학시험으로 본 한국어 시험에서 떨어지고, 면접에서 떨어진 유정이가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에 입학이 되자 부모님은 일단 일 년 정도 공부를 해 보다가 어려우면 돌아와서 미국 쪽으로 대학을 가라고 하면서 한국으로 보내셨다. 어눌한 한국어에 거의 외국인이나 다름없이 자라난 유정이의 고국인 한국으로의 유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연세대 면접을 갔는데요. 질문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대답을 못했지요.” 유정이는 한 번 면접에서 떨어진 후 이화여대에 면접을 갔다. “생각보다 쉽게 질문을 해 주셨어요. 그래서 대답을 했지요. 그랬더니 조금 어려운 질문을 하시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곤 저는 그 질문이 무엇인지 이해를 못했지요. 그때 잠깐 고민을 했어요. ‘그냥 알아들은 척을 할까.’ 그렇지만 무슨 질문인지 못 알아듣겠다고 솔직히 말씀드렸지요. 저는 이번에도 면접에서 떨어졌구나 생각했어요. 첫 질문도 영어를 너무 많이 사용해서 대답을 했고 다음 질문은 아예 질문 자체를 이해 못했으니 말이에요. 그런데 합격이 된 거예요.” 자신의 소개는 어떻게 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저는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황유정입니다’라고 했지요.”

천성이 솔직하고 꾸밈이 없는 유정이의 성격은 한국 생활에서 어려움을 넘어가는 비법이 되었다. 무시당할 수 있다고, 절대 특례생임을 밝히지 말라는 선배 특례생 등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유정이는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서 자랐다고 본인을 소개하고 모르면 가르쳐 달라고 했단다. 수업이 시작되자 한국어로 진행되는 수업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공부하기 위해 책을 읽어도 이해가 어려웠다. 1장을 힘들여 읽고 나면 이미 친구들은 몇 장을 다 끝낸 상태였다.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미국이나 호주 등, 영어로 공부하는 곳에 가면 될 것을 이렇게 힘들게 공부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은 다 수강을 하고 한국어 수업의 경우 교수님을 찾아가 말씀을 드렸다. 대부분의 교수님들이 흔쾌히 유정이를 돕기 원하셨고 리포트나 시험 답안을 영어로 쓸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첫 일 년 동안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게 된 것도 유정이의 한국 생활 적응에 큰 도움이 되었다. 대부분 지방 출신 친구들과 한 기숙사에서 지내게 된 유정이는 특히 같은 과인 언론홍보영상학부 친구들과 친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도 그랬지만 늘 주위에 친구를 달고 다니던 유정이의 친구 사귀는 실력이 발휘된 것이다. 유정이는 “못 알아듣겠어. 그게 무슨 말이야?”라는 질문을 달고 살았다. 친구들은 자신의 약점을 솔직히 인정하는 유정이를 열심히 가르쳐 줬다. 흔히 군기가 세다는 선후배 사이에서도 유정이는 모르는 것은 알려 달라고 하고 후배들은 기쁜 마음으로 그녀를 도와줬다. “아는 척하다가 나중에 탄로가 나느니 그냥 솔직히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게 제일 좋아요.” 유정이가 하는 말이다. 자신의 약점에 자존심을 걸지 않고 공개해 버리는 그녀를 주변 사람들은 기꺼이 도와주게 되는 것이다. 친구들은 유정이가 무남독녀 외동딸이라는 걸 알면 모두들 깜짝 놀란다. 지극히 독립적이고 친구 관계에서도 의존적이지 않은 그녀를 보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참 힘들었어요. 그래도 재미있는 일도 많았어요. 기숙사에서 친구들과의 시간들도 재미있었어요.” “한참 힘들었던 일 학년 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를 이해해 주길 기대하지 말고 내가 이 사람들을 이해하자고 결심을 했지요.” 같은 학부로 4년을 함께 갈 과 친구들의 수가 90여 명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 친구들이 외국인과 같은 나를 이해해 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일단 내가 이들을 이해하자고 생각했단다. 내가 이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4년을 함께 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먼저 이해하면 어느 날 이 친구들이 나를 이해해 줄 날이 오지 않겠나 하고 말이다. 유행이 시작되면 모두들 따라하는 것, 선후배를 너무 따지는 것, 다른 사람들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 등등. 이런 것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자란 유정이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가치관이었다. 그러나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하지 않았던가? 친구들을 이해하게 되자 친구들이 유정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항상 모르겠다고 하고 알려 달라고 하는 유정이 덕분에 친구들은 복잡한 내용을 간단하고 쉬운 단어를 사용해서 설명하는 기술이 늘었단다. 그래야 유정이가 이해하고 얼굴이 밝아지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단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이 문장의 속뜻은 어떤 것인지. 친구들이 참 고맙다. 말레이시아에서 자라면서 사귄 친구들은 편하고 내 모든 것을 다 아는 친구라고 한다면,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을 생각하면 항상 ‘고맙다’는 마음이 든단다. 책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하던 유정이가 3학년이 되자 책도 읽혀지고 시험에 나온 질문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신기했다. 학점도 잘 나왔다. 일 학년 때 받은 3과목의 C 학점 이후에는 모두 A와 B만 받았다. 기숙사에서 점호가 끝나면 모두들 방으로 들어갔다가 밤 12시가 넘으면 다시 모여 떠들며 지내던 시간들. 개구멍으로 주문해서 받아먹던 닭튀김. 미성년자인 유정이만 빼고 모두들 다녀온 술집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시간들. 한국에 친구가 없어서 미팅 한 번 주선 못한 유정이를 모든 미팅에 빠지지 않고 끼어 줬던 친구들. 자신도 모르게 그 많던 머리숱이 적어지고 탄탄하고 굵던 머리카락이 가늘어질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던 시간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시간들과 함께 지나갔다.

​‘이건 왜 이런 거야?’ ‘왜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이건 도대체 뭐지?’ 유정이가 한국에서 살면서 항상 가지고 있던 의문들이다. 이제는 이런 생각도 잘 안 한다. 모든 게 너무도 달랐던 내 나라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많아지자 이제 유정이도 한국인이 된 거다. 만일 미국이나 호주로 대학을 갔다면 절대 경험하지 못했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이제 유정이에게 생긴 것이다. 아직도 친구들은 유정이가 한국인 같지 않다고 놀린다. 한국 음식 좋아하는 입맛만 한국인이라고 말이다. 그래도 유정이는 큰 소리로 대꾸한다. “나는 한국인이야!

(말레이시아에서 유학생활을 열심히 한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할 때 한나프레스가 인터뷰해서 정리한 글입니다)(sskim520블로그)

이런 자료가 유학역사가 일천한 말레이시아로 유학오려는 후배학생들에겐 등대와 같은 좌표가 되고 또, 재학생들에겐 힘을 얻는 청량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