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칼럼

운영자 칼럼

교육컨설팅을 하면서 나눠드리고 싶은 글들 입니다.

ADHD와 경희대 패륜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0-05-18 12:00
조회
751
얼마 전 한 주간지에 ‘강남 3구는 ADHD 특구’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다.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우리말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라고 하는데 주의력이 부족해 산만하고, 과잉행동이나 충동성을 보이는 장애로 아동기에 많이 나타난다고 증상이라 한다.
그리고 잡지는 그 원인을 과도한 교육열과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이라고 하며 특히 강남의 과도한 교육열을 지적하고는 통계자료를 들이댔다.

건강보험관리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3~2008년 서울지역 25개 자치구별 10대(10~19세) ADHD 진료 합계 인원’중 노원구가 4307명이 진료를 받아 최상위에 올랐으며 그 뒤를 이어 강남구가 3891명(10.7%)으로 두 번째로 많았고 송파구(3097명), 양천구(2173명), 서초구(2071명)가 뒤따랐고 이들 사교육 특구지역의 진료 합계 인원은 모두 1만5539명(42.6%)으로 전체의 절반에 육박했다‘고 한다.

정체모를 통계와 여론조사가 판을 치는 세상인데다 그 정도쯤이야 학창시절에 누구든 겪는 과정이 아닌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는데 어느 의사의 얘기가 눈에 확 뜨였다.
바로 이 ADHD의 발병요인의 80%가 유전적 요인이고 환경적 요인이 남은 20%라고 하는 대목이었다.

그리고는 ‘강남’과 ‘유전’이라는 두 낱말이 며칠 전 내 사무실을 방문한 강남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그 강남 엄마는 방문 전 이미 몇 차례의 전화 상담으로도 만족할 수준의 의사결정이 끝나가는 상황이라 굳이 방문을 요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나 역시 그 엄마가 궁금했었다.
전화상으로 파악한 엄마의 교육열과 대기업 임원의 가정환경을 감안하면 최하위라는 아이의 성적이 의아했기 때문이다.

한 눈에 보기에도 부유층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엄마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수색이라도 나온 듯 몇 평짜리 사무실인지 그리고 집기는 어느 정도 수준이고 직원은 몇 명이나 두었는지 내부를 부지런히 살피기 시작했다.
물론 정보의 홍수로 불신의 사회에서 흔한 말로 스펙밖에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는 이상 탐색을 당하는 게 일상이 되기는 했지만 빈한한 내 사무실을 둘러보는 노골적인 눈길이 조금은 민망스러웠다.

어색한 분위기를 누르고 대화를 나눠보니 아이가 받았을 스트레스와 성적부진이 조금씩 이해가 됐다.
교양있고 조신하게 말을 나누다가도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말할라치면 번번이 말을 자르고 들어오기 일쑤였다.
그리고 내 의견을 묻고 나서는 정작 듣는 표정에는 지루함과 짜증이 역력했다.
예컨대 유학은 선택의 문제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면 ‘그러면 굳이 왜 내가 상담을 받으러 왔느냐’고 다그치듯 되묻거나 유학을 한다고 영어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고 하면 이내 ‘그럼 뭐하러 유학을 보내겠느냐’는 식으로 날을 세웠다.
또 자신은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다’고 누누히 강조를 했지만 말투자체가 아이에게는 성적보다 더 큰 스트레스였을 것 같았다.

대화와 상담을 업으로 삼는 나로서는 종종 마주쳐야 하는 확정편향성 고객 즉, 믿고 싶은 말만 믿고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불쾌한 반응을 보이거나 논지에서 벗어난 말로 자신의 불리한 상황을 덮어버리는 고객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논리가 밀리는 듯 싶으면 엉뚱하게 말레이시아라는 나라의 후진성을 들추고 서열화 된 편견으로 자가당착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강남을 비난하거나 그 엄마를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 객관화 할 수 없는 가치조차 객관화시키고 편을 가르고 마는 우리의 습관은 너와 나만의 일도 아니고 어제 오늘의 일은 더더욱 아니다.

따지고 보면 흔히 어릴 때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라고 묻던 어른들의 질문부터가 그랬다.
대,여섯살 아이에게 자기부모를 가지고 더 좋고 덜 좋고를 가르라고 하는 질문은 심각한 정서적 폭력이자 편 가르기의 시작이었다.
어른들의 그 질문이 할 얘기가 없어 던지는 것임을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 나에게는 아주 곤혹스런 질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편가르기성 질문은 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친구, 선생님 및 대상과 내용을 불문하고 전방위적으로 확대되었다.

너와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니
니네 선생님은 어느 학교를 나왔니
학부모 최종학력을 기재하시오
그집 아빠는 무슨 일을 한대

어쩌면 모든 일에 물질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다른 의견을 인용(認容)하지 않는 우리문화는 필연적으로 주의력결핍과 과잉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게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요컨대 어른들의 확정편향과 아이들의 ADHD는 한 뿌리라는 것이다.
바로 엊그제 화제가 된 이른바 경희대 패륜녀 사건도 직업은 물론 그 어떤 것이라도 반드시 편가르기와 계급을 매기고 마는 새로운 신분질서와 3자에 대한 배려와 주의력 결핍(AD)이 그 배경이다.
그리고 설사 물질적 기준에 중독되었다 해도 속으로 참지못하고 엄마뻘되는 어른에게 쌍욕을 해 댈 수 있는 것은 바로 과잉행동장애(HD)의 전형적인 샘플이다.

아무튼 2시간에 가까운 대화와 설득으로 강남엄마는 어느 정도 기세가 누그러진 듯 보였지만 돌아가면서 던진 마지막 말에 나의 노력은 다시 원위치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한마디가 내 상담의 자세를 다시한번 가다듬게 했다.

‘동남아 영어가 발음은 그래도 영어는 확실히 늘겠지요 ?
김선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