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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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하는 말레이시아의 리더십

작성자
admin
작성일
2007-08-19 12:00
조회
11503
말레이시아는 요즘 최대 도시인 쿠알라룸푸르와 인접한 행정 수도인 푸트라자야를 포함해 전역이 축제 분위기로 한껏 달아오르고 있다. ‘독립 50주년(8월31일)’, ‘50년 말레이시아 성공’ ‘말레이시아 하나의 운명, 하나의 유산(legacy)’….

이런 글귀를 적은 플래카드들이 세팡(Sepang) 국제공항과 도시 전체를 덮고 있는 가운데, 정부 부처와 대형 빌딩은 물론 소형 승용차들까지 13개주를 상징하는 노란색 별과 달이 새겨진 국기(國旗)를 내걸고 있다. 현지 매체들은 ‘카운트 다운 D-○○’을 세 가며 50주년 특집 제작물을 토해내고 있다.

푸트라자야에는 16일부터 저녁 불꽃놀이 축제가 시작됐고 쿠알라룸푸르•페낭 같은 대도시에는 연말까지 글로벌 명사(名士) 초청 특강, 기념 사진전•전시회•음악축제 등이 줄줄이 열리는 중이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하나같이 ‘볼레(Boleh•‘할 수 있다’는 뜻) 볼레’를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80년여의 영국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지 반(半)세기 만에 아세안 10개국 중 싱가포르에 이어 2위(1인당 GDP기준)의 부국(富國)으로 우뚝 선 데 대한 자부심이 넘쳐 흐르는 것이다.

말레이와 중국, 인도계 등을 합쳐 종족만 50개가 넘는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에 어떻게 이런 자신감과 낙관론이 퍼져 있을까? 해답의 열쇠는 의외로 도심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가령 ‘독립 50주년(Tahun Merdeka 50)’이 적힌 플래카드에는 압둘 라만 초대 총리를 필두로 압둘 라작, 후셈?다토, 모하마드 마하티르 등 4명의 전직 총리와 압둘라 바다위 현 총리 등 5명의 다정한 얼굴 모습이 나란히 새겨 있다.

한 서방 언론인은 “이들은 각각 말레이와 아랍, 파키스탄계 등으로 출신과 기반이 달랐지만 임기 만료 1년쯤 전에 후임자를 위해 미리 물러나는 등 양보와 존중의 미덕을 발휘하는 전통을 쌓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마찰’도 일부 있지만, 후임자들은 전임자들의 ‘그랜드 플랜’을 믿고 따르는 경향이다. 실제 1991년 마하티르 총리 시절, ‘2020년까지 소득 1만달러의 선진국이 되자’는 모토 아래 입안된 ‘비전 2020’은 지금도 현 정부의 최고 국정(國政) 지침이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다’는 속담대로, 이들을 대하는 국민들의 태도도 남다르다. 모든 역대 총리들을 ‘독립의 아버지’ ‘개발의 아버지’ ‘통합의 아버지’라는 식으로 명명(命名), 사실상 영웅처럼 추앙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와 랑카위에는 4명의 전직 총리가 재임 시절 썼던 책상과 의자, 책, 자동차와 국내외에서 받은 선물까지 한데 모아 전시하는 기념관이 연중 문을 열어 현장 역사 학습과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마하티르 전 총리가 명예회장을 맡아 의욕을 쏟고 있는 페르다나(Perdana) 리더십 재단의 경우, 전직 총리들의 국정 경험을 되살려 미래 발전의 밑거름으로 활용한다는 게 주 목적이다.

시선을 우리나라로 돌려보면 어떤가. 전직 대통령이 국가 원로(元老)로서 국가의 대방략(大方略)전략을 제시하는 건 고사하고, 진흙탕 같은 정치판에 일일이 ‘훈수’를 두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내년이면 정부 수립 60주년을 맞는 우리에게 지역과 정파를 넘어 상생(相生)하고 존중하는 말레이시아의 리더십은 새삼 따가운 ‘자극’이 되고 있다.

조선일보 송의달 홍콩특파원 2007. 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