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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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권하는 사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0-07-08 12:00
조회
390
지금처럼 책이 흔하지 않던 고등학교 시절, 공부하기가 싫으면 한국단편소설을 읽곤 했다.
한국 단편소설의 황금기라 일컫던 1920-40년대 시절의 김동인, 김유정, 주요섭, 염상섭, 나도향의 소설들 말이다.
그들 대부분이 인간의 심성과 근원적 욕망에 관한 내용이었지만 그중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목으로 지금까지 기억나는 소설이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 였다.
동경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생활고를 겪어야 하는 식민지 국가의 젊은 가장이 겪는 사회적 부조리와 가난이 주제였는데 작가는 그 당시 우리의 사회상을 술 권하는 사회로 이름붙였던 것이다.

내가 느닷없이 옛날 얘기를 꺼내는 것은 얼마전 한 젊은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우리 사회가 이제 현진건이 얘기한 술 권하는 사회를 넘어 죽음을 권하는 사회로 이행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2-3년 사이에 연이어 터져 나오는 연예인들의 자살 그것도 톱스타들의 죽음은 모르긴 몰라도 동서고금을 통하여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류스타인 그의 죽음에 2만여 일본 팬들이 패닉상태라는 소식과 함께 ‘대체 무엇이 한국연예인을 줄줄이 자살로 내 모느냐’는 일본 팬들의 물음에 나 역시 생각을 가다듬어 보았다.

돈 문제 때문인가, 아니면 인기에 대한 두려움 그것도 아니면 동업자의 배신, 단순한 충동......"

직접적인 원인이야 망자만이 알 수 있을테지만 그게 어떤 이유든 우리사회의 획일성이 자살을 유도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단일민족의 배경부터 반도국가인 지리적 환경 그리고 5천년 역사적 지식까지 총 동원해야 할 일이지만 이 획일성을 다양성의 부재 즉 나와 다름을 용인하지 않는 집단주의로 바꾸면 어느정도 수긍이 갈 것이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는 다른 의견을 내기가 어렵고 개인들간에도 충고가 성립되지 않는게 현실이다.
사사건건 양극으로 달리는 정치권의 논쟁이야 밥그릇 싸움이니 그렇다쳐도 일반인들까지 헛개비같은 진보냐 보수냐의 논쟁에 매몰되어 우정어린 사사로운 충고마저 단절로 이어지고 심지어 살인까지 벌어지지 않는가.
얼마전 MB 정부의 정책지지도는 50% 안팎이었지만 호감도는 그 절반에 그쳤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44%에 이르는 반대층의 MB에 대한 이미지는 한마디로 뭘 해도 싫다였다.
‘무조건, 무조건이야’라는 노랫말이 단지 노래방에서만 그치는게 아니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때도 마찬가지였다.
상고출신 까지도 모자라 장인의 전력까지 도구로 삼아 인신공격을 했다.
당신을 향한 나의 미움은 무조건 무조건이야......특급 미움이야
즉, 비합리적 무조건적 행위에 대한 자기합리다.

돌아가신 이규태 선생의 책에 보면 1866년 한국에서 순교한 프랑스 신부인 베르베르 주교도 우리의 무조건 정신에 언급한 내용이 보인다.
“조선민중의 신앙 성격은 매우 단순하여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진리를 가르치면 쉽게 감동하여 입신을 하고 입신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어떤 희생도 무릅쓴다. 반면에 진리를 풀이하면 잘못 알아듣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단재 신채호선생도 개탄한바가 있다.
왜 불교가 들어오면 조선의 불교가 아니라 불교의 조선이 되고 유교가 들어오면 유교의 조선이 되고 또 기독교의 조선이 되는가라고.
이를 이규태선생은 우리의 신바람 정신이라 했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무조건 정신으로 바꿔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유와 조건을 듣지도 따지지도 않는 무조건 정신.
달리 표현하면 무데뽀 정신 말이다.
분명 이 무데뽀 정신은 우리 경제를 선진국으로 밀어올린 산업화의 원동력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산업화를 넘어 정보화로, 후진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들어선 우리에게 이런 획일적 문화는 필연적으로 대화와 소통의 단절 그리고 소외감과 분노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내가 어릴 때에도 다른 의견을 말할라 치면 ‘말이 많으면 빨갱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나와 다름은 무조건 싫으니 끊임없이 남들과 같은 방향인지 확인해야 하고 무리를 지어야한다.
그래서 우리 편이라고 확인되면 그 어떤 행동에도 눈을 감아야하고 다른 편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비수를 날리는게 일상이 되었다.
죽음까지 내모는 악플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었다는 최진실씨 사례가 그것이다.
또 예의는 아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 역시 반대편의 조롱에 발끈하여 그의 직설적 성격처럼 쉴새없이 날렸던 그 독설이 부메랑이 됐던게 아닌가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도 나타난 전국의 집단적인 응원, 특히 젊은이들의 파격적인 의상과 열기가 부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감도 들었다.
평소 국내축구경기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도 국가대항전에는 만사를 제쳐두고 그것도 한 장소에 모여 수만 수십만이 집단 황홀경에 빠져드는 획일성 말이다.
특히 새벽 3시에 벌어진 날에는 밤새워 거리응원을 마치고 등교하는 여고생들을 보면서 이제 우리사회의 소통은 개인이 아닌 집단 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별 주체간의 대화와 소통이 단절된 사회에서 판단기준과 타인에 대한 평가는 그 흔한 말로 스펙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학교 때는 성적이 그 잣대요 사회에 나오면 학력과 외모, 그리고 아파트 평수에서부터 자동차 배기량 나이들어서는 자녀들의 출세에 이르기까지 내편과 네편을 확인하고 같은 편끼리라도 반드시 우열을 가려야 한다.
그래서 내가 하면 로맨스요 네가 하면 무조건 불륜이 된다.
모르긴 몰라도 공인인 연예인들의 세계에서도 인기의 스펙 경쟁은 더욱 치열하고 그만큼 불안감과 고독감은 가혹했을 것이다.

나와 다른 타인을 인정하지 않는 지극히 무조건 이기적인 면을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우리는 하나라는 무조건적인 집단문화에서 부동의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우리의 자살율은 결코 쉽게 물러서지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김선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