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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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컨설팅을 하면서 나눠드리고 싶은 글들 입니다.

희망과 소통의 새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0-01-04 12:00
조회
860
새해 아침부터 핸드폰이 수시로 부르르 떨고 있습니다.
정초부터 누군가 하고 확인해보니 친구나 후배들이 보내오는 문자 메시지들입니다.
‘경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로 시작하는 문구나 ‘대박나세요‘라는 후렴구도 비슷 비슷합니다.
들어온 메시지에 나 역시 문자로 답글을 날리려고 보니 자판도 서툰데다 왠지 형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전화를 하려니 한,두명도 아니고 또 모두 가족과 함께 있거나 잠에 빠져 있을텐데그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무엇보다 나 역시 상투적인 덕담 외에는 별 할 말도 없을 것 같은데다 그중 일부는 갑작스런 이해관계로 연락처만 주고 받은 후 해가 넘도록 소식도 없던 마당에 생각만 해도 쑥스러웠습니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나 역시 문자메시지로 답장을 날리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새삼 온라인의 편리함과 위력을 실감합니다.

사실 내가 문자메시지 서비스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핸드폰은 통화기능 하나로도 감격스럽고 충분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국내에 들어와 보니 통화보다는 문자메시지가 오히려 가장 중요한 의사전달 수단이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같이 새해인사뿐 아니라 부고장을 대신하고 웬만한 업무연락이나 어색한 얘기는 문자메시지가 대신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달라진건 그 뿐만이 아닙니다.
국내에 돌아와 제 아내는 대부분의 생필품은 물론 과일에 생수까지 인터넷에서 클릭 하나로 주문을 끝냅니다.
그러다보니 굳이 시간과 경비싸가면서 얼굴 맞댈 이유도 없고 연하장을 파는 문방구 나 인쇄업자도 문을 닫고 시장할머니와 구멍가게도 점점 설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어찌 보면 이제 남아 있는 일자리라고는 그저 생산자의 물건을 전달하는 배달의 기수 밖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농담이지만 오래전부터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배달민족이라고 부른 데는 다 그만한 조상님들의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 보면 새천년이 시작되고 지난 10년의 변화는 현기증이 날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말레이시아로 태국으로 다시 한국으로 한바퀴를 돌아 다시 원위치가 되었습니다.
국가적으로는 2000년 IMF 그늘을 벗어나나 싶더니 곧바로 사상 유례없는 신용과 자산거품이 끼고 이내 2차 대전후 최악이라는 경제위기가 또 우리를 강타했습니다.
그리고 채 2년도 안되 새로운 10년을 여는 올해는 벽두부터 언론과 방송들은 한결같이 장미빛 희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어리둥절 하지만 나 역시 사회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놀라게 한 우리의 저력을 생각하면 미래를 긍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긍정적 희망을 골고루 나눠 갖기는 이미 개인이든 사회든 구조적으로 불가능 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 집니다.
실제 세계화라는 무한 경쟁구조와 카지노 자본주의로 불리는 금융산업구조에 약소국과 약자들의 희망은 점점 시들어가고 있는 게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2001년의 9.11 테러부터 줄기차게 이어지는 테러와 분쟁이 그렇고 개인의 고독과 소외감 역시 나날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일찌감치 미국의 사회학자 리스먼은 고도 산업사회에서는 주위환경이나 시선으로 부터 밀려나지 않기 위해 외부지향형 인간이 되지만 내면속에 흐르는 고립감에 번민할 수밖에 없는 인간 즉 군중속의 고독이라고 표현한 그대로입니다.
실제 유례없는 경제발전속도와 고령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30개국 중 최고라고 합니다.
이제 배고픔과 가난을 넘어선 우리에게 다가온 과제도 바로 고독과 절망으로부터의 해방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새로운 10년을 여는 2010년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한파가 연일 기승을 부리지만 봄은 점점 가까워 오고 있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부디 희망과 소통의 끈을 놓지 않고 자유를 누리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김선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