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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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컨설팅을 하면서 나눠드리고 싶은 글들 입니다.

뿌듯한 하루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2-12-14 12:00
조회
920
오늘 뜻 깊은 조회를 했다
한 달에 한번씩 서는 애국조회, 달래 애국조회가 아니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애국가를 불러서 애국조회다. 주중에 다 각자 영어학교, 중국학교, 말레이학교를 다니는 애들에게는애국가를 부르고 국기를 접할 기회가 없다. 조국이 어떻고 영어국어수학지식 얘기하기 전에 애국가는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닌가…
매번 애국조회를 할 때 마다 하는 소리가 남의 학교니까 잘 사용하자. 복도에서 뛰지 마라 남의 반 수업에 지장을 준다.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지 마라. 질서를 지키자. 남의 나라에 와서 문화국민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이런 고리타분한 얘기 말고 좀 고상하고 금과옥조가 될 만한 훈화를 하고 싶어서 책도 보고 훈화문을 작성해서 미리 연습도 했다. 그러나 사실 교장훈화라고 해서 연단에 올라가보면 말이 막힌다. 학생은 500여명 밖에 안되지만유치부부터 고등 2학년까지 6세부터 17세까지 10년 차이 나는 학생들에게 공통의 주제를 잡기가 쉽지않은 것이다. 공자맹자 얘기하자니 유치원생들은 못 알아들을 테고, 토끼 거북이 디즈니랜드 얘기하자니 머리 큰 애들이 웃을 테고 고민이다. 초점을 잡을 수가 없다

오늘은 책 얘기를 했다. 어떤 특정한 책 얘기를 한 게 아니고 한인학교도서관에 있는 책 얘기이다. 요즘 부쩍 도서관에 학생들이 많아졌다. 쉬는 시간에 다 보지 못한 책은 집으로 빌려가서 서고가 휑하니 비어 있다. 책을 한 권도 안 빌려간 학생은 없을 것이다. 영어/중국어로 된 책만 보다가 한국말로 그것도 컬러로 알기 쉽게 멋지게 인쇄되어 상큼한 잉크 냄새 나는 책을 잡는 순간 누구나 다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교실에서도 책 본 얘기들을 하는 것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그 도서관에서 읽은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재마 충청향우회에서 600여권의 책을 가져왔고개인사업하시는 분이 200여권을 기증한 것이다. 금년 봄에는 삼성그룹에서 500여권을 기증해 제법 도서관 같았었는데 이젠 서고가 꽉 찬 것이다. 책값하고 수송비를 계산하면 1500만원도 넘을 것이다.
그래서 종이 한 장 이지만감사장을 만들어 감사의 표시를 학생들 앞에서 하였다.
“한국교양도서가 부재한 말레이지아에서 한인학교 학생들의 정서교육과 지식함양을 위해 도서를 기증해 주셔서, 이에 감사의…”
장래에 학생들도 커서 이런 좋은 일을 하라는 뜻에서…

사실 한인학교는 학교라고 하기에는 창피했다. 초창기에는 한글을 가르친다고 세운 학교지만 학생수가 300명이 넘고, 학생들의 요구가 단순한 한글교육수준을 넘어선지 오래 됐다.
역사는 30년이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 교실도 없고 이 학교 저 학교 임대해서 여기서 쫓겨나고 저기서 쫓겨나곤 했다 카톨릭 재단이 운영하는 학교를 빌려 쓰고 있었는데 애들이 고의이던 실수이던 성모 마리아상을 깼으니 쫓겨난들 어떻게 하겠는가. 자기 학생들이 쓰는 기물/작품을 우리 애들이 찢고 깨고 부수니나가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지금 임대해 쓰고 있는 이 Sayfol로 이사 온지는 4년 정도 됐는데 거의 한 달에 한번 꼴로그 학교 교장한테 불려갔다. 적게는 깨진 것을 변상하라는 얘기에서 나가달라는 경고, 그리고 마지막기회다, 3개월 내로 학교를 비워달라는 엄포까지 그 학교에서 전화를 받고 학교로 잠간 출두하라고 하면 밥맛도 없고, 겁이 난다. 요새는 휴대폰에 상대방 전화번호가 찍히니까 그 학교 번호만 보면 전화 받기가 싫었다.
자원봉사어머니제도가 있어 어머니들이 학교가 끝나면 청소를 해주는데도 마찬가지였고, 현지 청소원을 별도로 고용하여 또 한번 점검하라고 했는데도 불려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쉬는 시간에 우리 애들이 교실에 있는 남의 작품을 찢고 낙서하는 것은 어머니들이 알 턱이 없다.
우리 27명의 교사들이 얻은 결론은 우리 학생들이 주중에 다른 학교 다니다가 한국학교만 오면 애들이 흥분을 하고 와일드 해지고 폭발하려는 압력이 높기 때문이다라고 판단을 하게 되었다.
압력을 빼서 다른 곳으로 돌리는 일을 시험 하기로 했던 것이다.
결국 몇 시간 안 되는 학과 시간을 쪼개서 체육시간을 두었다.일주일치를 하루 만에 진도를 마쳐야 하는 교사들에게 시간을 빼서 체육시간을 만들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달에 1시간 꼴로 체육시간을 두어 두 분의 체육교사가 놀이도 하고 금년 봄에 재마 축구동호인들이 기증한 철봉틀에서 매달리기 턱걸이도 시켰다.
한편 애들이 좋아 할만한 한국의 신간서적을 도서실을 마련하여 비치해두니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그 책들을 보려고 몰려들었다
이런 식으로 폭발하려는 압력을 분산시킨 지 채 1년 안되어서Sayfol 교장에게 불려가는 횟수가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1,000여권 있는 책을 볼만큼 본 학생들은 싫증날 때가 된 것이다
지난 여름 어느 모임에 나가서 매일 골프치고, 술 마시고 놀지만 말고좋은 일 좀 하는 게 어떠냐고... 한인학교에 책을 기증 좀 해보라고 했는데 오늘 800여권을 모아 기증한 것이다.

지역사회에 있는 분들이 한인학교 교사들의 요구에 귀를 기우려 호응해주고, 또 그 책들을 읽기 위해 도서관으로 몰리는 학생들을 보고 있으려니뿌듯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