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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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컨설팅을 하면서 나눠드리고 싶은 글들 입니다.

교육과의 화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2-10-02 12:00
조회
682

한인사회에 유익한 내용을 전하는 “늘푸른 나무”에서 <교육과의 화해>라는 아주 어려운, 그러나 흥미 있는 제목을 주어 평소에 생각했던 것을 싣는다.

화해라는 것은 서로간에 불화가 생겼거나 오해를 했을 때 이해라는 과정을 거쳐 이루어 질 수 있다
이세상에서 학교 가기 좋아하고, 시험보기 좋아하는 학생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근본적으로 교육과 피교육자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 화합이 되지 않는다.
학교나 보내고 과외만 시키면 저절로 자녀들이 훌륭한 성인이 되는 줄 알고 있는 부모가 많다.입버릇처럼 공부공부하라고 하기만 하면 부모의 책임이 면제되는 줄 오해 아닌 오해를 하고 있다. 어쩌면 부모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해외에 살기 때문에 얻는 게 있고 잃는 것이 있다. 얻을 수 있는 것은 확실히 취하고,
무엇을 잃게 되는지 이해하여 이를 보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른 나라의 풍물을 알게 되어 견문을 넓힐 수 있고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것이 얻는 것이다. 외국어교육을 확실히 시키니 나중에 먹고 사는데 지장 없을 것이라고 한다. 특례생이 되면, 그 힘든 입시 경쟁에서도 대체로 서울에 있는 대학은 갈 수 있으니 부모 잘 만나 덜 고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외에서 초등학교부터 있었던 학생들에겐 한국어가 서툴어서 한국으로 전학 가거나 상급학교에 진학해서 적응하는 게 어렵다. 특례로 대학은 들어갔지만 입시지옥에서 무장된 한국에서 공부한 애들 에게 왕따 당하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F학점 한 두개는 각오해야 한다. 일부 특례입학생들이 동료재학생에게 과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당해본 학생이 아니면 모른다.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낙제를 거듭하다 도태되기도 한다. 대학 들어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나 들어가서가 문제이다.

여기서 살기 때문에 잃는 것, 보완해주어야 하는 것은
첫째, 정체성의 상실이다, 즉 본디의 모습을 망각하는 것이다.
이민의 역사가 오래된 미국에서조차 한국인이 아무리 영어를 잘하고 우수해도 그들은 우리를 Korean으로 분류하고 있고, 그들의 상류사회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Korean일뿐이다. 유태인이 온 세상을 방황해도 그들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만의 언어와 관습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적있는 교육을 시켜야 하는 것이다
둘째, 단절성이다. 한국사회는 혈연, 학연, 지연과 같은 인연으로 얽혀진 사회이다. 그 폐단을 논하기 전에, 김춘추와 김유신이 처남 매부지간이 아니였으면 삼국통일이 되기힘들었을 것이고, 전두환과 노태우가 육사를 같이 다니지 않았으면 노태우가 대통령이 됐을리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애들만이라도 정기적으로 한국에 보내 최소한 사촌형제들 끼리라도 어울리도록 해야 나중에 서먹서먹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세계적인 도시로 변모한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자랑스러운 우리의 예술과 전통문화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셋째, 적응성의 결여이다.
여기 있는 우리의 애들은 분명 한국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얻고 있다. 국제학교의 커리큘럼을 들여다 보면, 한국의 일반 학교에서 상상할 수 없는 질 높은 교육을 가르키고 있다. 현지 중국학교에서는 과대하다고 할 정도의 학습량을 애들에게 쏟아 붇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애들이 이 좋은 내용을 한국식으로 변형(Transforming)을 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조선족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분명 한국말인데 왠지 고어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들이 쓰고 있는 언어는 이주할 때에 조선에서 쓰고 있는 표준어를 쓰고 있을 뿐이다. 그 곳에서도 계속 TV로 한국방송을 들을 수 있었으면 지금 그들의 언어와 우리의 언어에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TV/비디오에 탐닉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 애들의 경우와는 다르다. 부족한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는 것이다. 국어의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에어린이용 비디오나 현재 한국에서 쓰고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씨트콤같은 프로를 반복해서 보도록 권장해야 할 것이다
넷째, 불연속성에서 오는 논리적 사고의 결여이다.
교육은 반복의 과정이며, 학업을 마친 후에 그들의 일생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도록 훈련하는 과정이다. 대체로 애들이 12-16년을 공부하고, 이 때 습득한 지식 및 인격을 바탕으로 약 30-40년 동안 자기의 인생을 경영 한다. 성년이 되기 전까지의 교육은 중간에 쉬거나 빼먹으면 나중에 꼭 드러나게 되어 있다. 벽돌 몇 장 빼놓고 지은 집과 같을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소년삼국지가 있고 고우영삼국지가 있고 이문열삼국지가 있듯이, 교과과정이 연령에 맞게 지식의 내용을 반복시키기 때문에 저학년에서 배운 내용이 허술하더라도 고학년에서 배운 지식으로 덮어씨우기를 할 수 있다. 문제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체계는 어렸을 때부터 차츰 형성되어 나가는 것인데, 이곳 저곳에서 이것 저것을 가르치다 보면 애들이 혼란에 빠져 논리체계가 명쾌하지 못하게 형성된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애들은 부모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 잘못될 확률은 상대적으로 적고 대화 할 시간이 많다. 한국에 가면 중/고등학생이 읽어야 할 소설들을 엄선해 놓은 책들이 있다. 줄거리를 요약해 놓았고 어떤 관점에서 비평을 해야 하는지도 나와 있다. 부모가 조금만 성의를 보이면 애들의 논리체계 형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섯째, 이왕이면 두 가지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중국을 최근에 한번이라도 갔다 온 사람은 느낄 일인데, 우리 애들이 사회에 나올려면 앞으로 20년 뒤일 것이다. 그때는 중국어가 비즈니스 용어로서 영어 못치 않게 중요할 것이다. 중국어는 발음이 특이하여 혀가 굳기 전에 발성법이라도 익혀 놓아야 나중에 본격적으로 배울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학년이고 말레이시아에서 오래 살려고 하는 경우에는 이왕이면 중국계 학교를 보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 논 부모가 분명 있다. 원만하고 반듯하고 활동적이고 성적우수한 애들을 키워 논 부모가 있다. 이런 선배들이 얻은 지혜를 들어보는 것도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법일 것이다.

말레이시아에 살기 때문에 애들에게 상대적으로 좋은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애들은 학교 가기 싫어하고, 자유스러워지려고 한다 - 그러나 아직 미성년자라는 인식, 잃는 부분을 보충해주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외국에서 교육시켜서 다행이라고 방심할 것이 아니라, 무작정 열린교육이 좋다고 할 것이 아니라, 교육과 화해하려고 마음을 겸허하게 열 때 자녀들의 장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