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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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컨설팅을 하면서 나눠드리고 싶은 글들 입니다.

교장임기를 마치고(3) “대통령께 건의도 하고, 책도 팔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4-06-25 12:00
조회
459
학교주인이 오랫동안 써도 좋다고 했으니 쫓겨날 걱정은 일단 접어두어도 되었고,
에어컨도 있고, 교실 넉넉하니 학생수 늘어나면 분반하면 되었고,
운동장이 있으니 유치원 초중고등학생 전교생 모아서 조회도 할 수 있고,
학교건물이 있으니 봉사해주시겠다는 교사도 확보되었으니,
이제는 그만 두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데…

어느날
대강할 교사가 저밖에 없어서 한시간을 때우기 위해 들어 가기는 했는데, 옆 교실에서 수업하는 게 다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윗층에서 학생들 발소리가 달그락 달그락 들리고 좀 심하게 발을 구르면 밑에 층에 있는 교실 형광등이 흔들릴 정도 였습니다. 합판 한 장짜리 벽이었고, 천정이 바로 윗 층 마루바닥인 것이었습니다.
일주일치를 하루만에 가르치니 일분 일초가 중요한 순간인데, 옆반, 윗반 때문에 수업이 방해받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 아직 할게 남았군
사실 우리가 언젠가는 학교를 지어보겠다고 모아 논 기금이 있었습니다. 선임교장들이 경비를 줄이고 줄여서 모아 논 것과 제가 모은 기금등 약 1억여원이 있었는 데, 이걸 헐어서 학교를 보수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학교 짓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금액이니, 언제 제사 한번 지내려고 쫄쫄이 굶고 지내겠습니까. 남의 학교에 돈 쓰고 싶지는 않지만, 현재 다니는 학생들도 혜택을 받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운영위원회에는미리 승인을 받아 놓고 쎄이폴 재단 이사장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고치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한 1억5천만원이 드는데 돈이 없다고 버티는 것입니다.
해서 내가 건설회사 출신인데, 10만링깃(3천만원)만 들여서 고치자고 했습니다. 한인학교는 반만 내기로 했지만, 남의 학교에 돈을 쓰니 배가 아파서, 한국학생이 쎄이폴 국제학교에 입학할 때는 누구나 1인당 RM500씩 깍아 주기로 했습니다. 그 뒤로 100명이 입학했으니 우리 한국측에서 보면 단 한푼도 안낸 셈이 되었습니다.

이런 일 잘하시는 홍영길 Ikatan Cerah이사님에게 특별히 부탁을 드렸습니다. 홍이사님은 대기업에서 수천억짜리 현장소장하시던 분인데 3천만원짜리 공사를 맡긴 것입니다. 그것도 무료봉사로.
문짝 만드는 현대광원 신학원사장님에게 문짝 전량 기증 받고, 페인트회사를 졸라서 반값에 사들이고…
직접 줄자를 가지고 일일이 다 재고, 재료는 우리가 직접 구매하고 일꾼들에게 품값만 주니 비용이 훨씬 줄어든 것이다. 방학 때에 맞춰서 해야 하니, 밤낮으로 2개월만에 끝냈습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취지에 여러분들의 정성어린 지원으로 지금은 좀 더 아늑하고 방음이 된 교실에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학교가 아니니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는 늘 있는 것이었습니다.
집 주인이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늘 섭섭한게 셋방살이 인데, 세이폴에서는 한 달에 한번 꼴로 저를 불러서 한국학생들이 낙서를 한다, 부착물을 찢어 버렸다, 문짝이 부셔졌다, 뭐가 없어졌다 등등 핀잔,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 학교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빈번히 호출 당할 때 마다, 잠도 안 오고, 밥 맛도 없었습니다.
“그래 나 한 사람만 고개 숙이면 되지, 뭐”
그렇다고 우리 학생들을 너무 닥달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좀 뛰놀다 보면 깨기도 하고 찢기도 하는 것이지요.

사실 학교를 건립할 기회는 몇 번 있었습니다.
1999년 가을인가 김대중대통령께서 국빈방문으로 오신다는 겁니다.
잘 되었군. 학교를 지어 달라고 하면 되겠군.
몇날 며칠을 쓰고 지우고 해서 “존경하는 대통령님… 국가의 장래와 자라나는 새싹을 위해…”하는 글을 잘 닦아서 화장실에서도 읽어보고, 차 타고 다니면서도 외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대통령을 만나기 바로 전에 상부의 지시라고 어려운 부탁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들이 별도로 청와대에 요청을 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간담회가 아니고, 연설만 하셨으니 무슨 건의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이런 수법에 우리가 한번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1996년인가 김영삼대통령이 여기 오셨을 때인데 운영위원 이었던 저와 몇몇 분들이 그 때 교장선생님에게 학교건립건을 요청하도록 글을 써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동포간담회가 다 끝날 때 까지 그 분은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 겁니다. 간담회가 끝나고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셨냐고 물어보니, 높은 사람이 자기들이 직접 전할 테니까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속은 줄 알았습니다. 삼성 현대 LG등 대기업회장님들을 다 대동하고 왔으니 대통령이 한마디만 하면 학교가 생기는 것인데 이 좋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대통령이 부담스러워 할까 봐 알아서 중간에 짤라 버린 것입니다.

마침 영부인께서 따로 학교 관계자들을 초청한다고 해서 잘 됐다 거기서 얘기하면 되겠다고 단단히 맘먹고 있었는 데 그 자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 담당자가 너무 부담되는 부탁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빌어먹을 자기들은 여기 잠간 왔다 가는 놈들이지만, 여기 있는 교민들은 뭐 한국사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줄이고 줄여서
“우리도 대통령사진이 걸려있고, 한국지도 걸어놓고 교육시키고 싶다고” 고만 했습니다.

그 말을 알아 들으셨는지 나중에 대사관을 통해서 사업계획서를 올려보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부지도 알아보고 한인학교 건립위원회를 만들어 한 10억원이 드는 데 반은 지원해주면 반은 여기서 모금하여 지어볼 거라고 올렸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서, 한국에 들어가 교육부를 찾아가 보니, 재외동포재단으로 업무가 이관이 되었다고 합니다. 재외동포재단을 또 물어 물어 찾아가서 우리가 제출한 계획서는 어떻게 처리되느냐고 물어보니, 받은 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산이 없어서 그런 안이 올라와도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그런 줄도 모르고 목이 빠져라 기다린 넘이 잘못입니다.

안되겠다.
우리끼리 자력으로 지어보자고 모금을 하려하니, IMF뒤라 어느 기업도 선뜻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뜻 있는 몇 분과 같이 1년을 걸려서 책을 발간해서 팔았습니다. “신이 내린 축복의 땅 말레이시아”. 지금은 다 팔려서 없습니다만, 교보문고 종로서적에서 팔았습니다.
최송식 전한인회장님이 총괄하시고, 김명희 대사관직원, 김원진 서기관, 문영주 영사, 서규원사장, 장철사장, 방지연씨 유재력 사진작가 그리고 제가 공동집필하고, 마하티르 수상에게 축사 받고, 이병호대사님의 축사를 싣고, 이화출판사에서 인쇄하여 한국은 물론 말레이시아에서 팔아서 이익금 전액을 학교 발전 기금으로 기증하였습니다.
공동집필한 사람들은 한푼도 못 가져가고 오히려 만나서 밥 먹고 협의하는 경비와 한국 왔다 갔다 하는 경비는 자기 주머니 돈으로 썻습니다. 저야 교장이니까 생색이라도 내지만, 그분들은 저 한테 잘못 걸려 고생만 했습니다.
우리 2세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남겨주겠다는 소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