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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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컨설팅을 하면서 나눠드리고 싶은 글들 입니다.

교장임기를 마치고(2) “그만하면 더 있어도 좋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4-06-09 12:00
조회
369
“그래 더러워서 나간다”고 작심은 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막막했습니다. 운영위원회에서는 전폭적인 지원을 해줄 테니 찾아 보라는 지시가 고작이었고.
Good Shepherd학교에서도 사실 우리가 미워서 내쫓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기들 나름대로 미혼모를 위한 학교를 개설하다 보니 토요일까지도 교실을 써야 했던 것입니다. 카톨릭재단이니까 12년동안 임대료 몇 푼 안받고 큰 잔소리 없이 빌려준 것입니다. 한인 카톨릭 신자들이 마돈나 성당을 나가고 있고, 우리 신자들이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빌려주었던 것입니다. 어느 누가 카톨릭 재단과 같이 너그럽게 우리를 이해해주겠습니까

담당 수녀님에 불려갈 때마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 사실은 남몰래 몇 개 학교를 기웃거려 본적이 있는 학교에 집중적으로 매달리기로 했습니다.

학교 임대하는 게 교문에 가서 수위한테 허락 받는 게 아니니, 2주전에 책임자를 만나겠다고 예약을 하고, 옷을 깔끔하게 차려 입고 가야 했습니다. 가뜩이나 더워서 넥타이를 1년에 한 두번 매는 게으른 사람인데 넥타이 매서 학교만 빌릴 수 있다면야 당연히 감수해야 하지요. 한번 만나서 가타부타 결정이 나올 수 없고, 다음에 만나자, 재단에 문의해야 한다, 교육부에 허가를 받아야 하니 다시 공문을 써와라,
셋방살이 하러 들어가는 주제에 사랑방이면 어떻고 옥탑방이라고 가리겠습니까

아마 열 군데가 넘는 말레이시아 공립학교, 국제학교에 타진해보았습니다.
결론은 한국학생들에게는 빌려줄 수 없다고 못박아 얘기했습니다.

그 과정을 다 옮기려면 또 한 편을 써야 하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빌려주지 못하는 이유는
학생들이 교재를 자기 책상에 놓고 다니는데 우리 학생들이 이 교재를 건드리지 않도록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또한 공립학교는 우리가 지급하는 임대료 수입을 어떤 계정으로 처리할 것인지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정부지원을 받아서 운영하는 학교이고, 별도로 수입이 발생했을 때 교장이 임의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고 이런 경우가 처음이니 교사 특유의 결벽성 때문에 교육부에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으니 뭐라고 반박도 못하는 것이지요. 또한 수도세, 전기세는 어떻게 정산 할 것이며, 미터기를 별도로 달 아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재는 학생별 로커를 만들어서 그곳에 보관하도록 하겠다고 하고 임대료 대신에 컴퓨터나 다른 기자재로 기증하겠다고 해도 본부인 교육부에서 승인이 날려면 1년은 걸린다는 것입니다.

사립학교인 국제학교도 교재 놓고 다니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또한 임대료가 너무 적어서 관심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한인학교가 두 학교를 빌려 쓰면서 지급한 금액은 RM3,500(약100만원)이었는 데 국제학교가 요구하는 월임대료는 RM10,000이었습니다.

차라리
셋방살이 하느니 공터를 임대해서 컨테이너를 2층으로 올리고 그곳에서 수업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건설회사로부터 공사 끝나고 남은 컨테이너를 기증 받으면 될 것 같아서 공터를 물색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이전 1개월 남겨놓고,
Sayfol 국제학교에서 빌려주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렇지 지성이면 감천이지.
세이폴이면 한국인이 모여 사는 곳에서 가깝고, 교실수도 많으니,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합쳐서 같은 캠퍼스에서 수업을 하니 여러모로 편리하고 좋을 듯하여,
좋고 나쁜 것을 가릴 형편도 아니라,
Good shepherd 재단에는 호기 있게 그렇지만 정중하게 이제는 나간다고 큰 소리치고 트럭도 빌려놓고 이삿짐을 쌋습니다.

학기에 맞춰서 이사준비를 하고 집기를 싣고 가겠다고 통보하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들어오지 말라고,
아 이놈의 학교에서 맘이 변했는지, 임대료를 올리려는 심사인지, 사실 임대료는 기존에 두 학교에 지불하던 RM3,500으로 제시해서 좀 헐값이라고 생각은 했습니다.

재단에서 지시가 내려 왔는데 임대를 취소하겠다고 합니다. 임대 계약 쓸 시간적 여유 없이 이사 가기로 한 것이고, 임대계약서는 입주하면서 작성하기로 해서 할말 도 없었습니다.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보니, 확고하게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어 이거 정말 장난이 아니네

시간은 이틀 밖에 없는 데, 담당이사를 찾아가 변심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우리가 몇 군데 수소문해보니 한국학생들이 깨고 부수는 데는 선수라, 토요일 하루 빌려주었다가는 학교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선물을 좀 사들고 재단이사장집을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당신도 교육을 시키는 사람인데 300여명을 어디서 가르치겠느냐”, “나도 교장직을 그만두려고 한다. 교장이 공석이면 대사관에서 교장대행이 되는데, 이틀 전에 들어오지 말라는 것은 대사관에서도 기분 좋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 학교에 한국학생도 꽤 다니는데 다른 학교로 옮길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공갈도 치고 했습니다.
나야 이젠 정 안되면 교장 그만두고 운영위원회에서 알아서 하라고 나가자빠질 심사로 좀 쎄게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일단 갈 데가 없다면 들어와서 6개월의 기한을 줄 테니 다른 곳을 물색해보라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조건부 임대였습니다.

우여곡절은 겪었지만, 두 군데에 흩어졌던 초중고등학생을 전부 모아서 조회를 하니 규모도 있어 보이고, 방송장비가 있으니 애국가제창도 테이프를 틀어놓고 할 수 있고, 마이크로 훈화를 하니 좋기는 한데 6개월이 기한인 것입니다. 항상 무거운 마음이고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한편으로 다른 학교를 물색하면서,
자원봉사어머니제도를 활성화해서 교실 쓰레기통에 봉투쒸워서 하교시 수거하도록 하고, 복도 운동장 청소, 심지어는 화장실 물청소까지 해주시도록 부탁하고, 책걸상 정리정돈 하여 한인학교가 사용한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그 학교선생 입장에서 보면 금요일에 책걸상 정리정돈해 놓고 퇴근했는데 월요일에 들어와보니 어지럽혀 있다면 좋아 할리 없을 겁니다.

하교시 운동장에 행선지별로 팻말 세워서 주차장에 있는 버스까지 줄 맞춰서 이동하도록 하고,
한 달에 한번씩 전체조회를 서면서 “남의 물건을 소중하게 다루는 예의 바르고 선진국민이 되자”고 달래기도 했고, “기물을 파괴하거나 부착물을 손상시키는 학생은 엄벌에 처하겠다”고 엄포도 놓았습니다. 학교에 나와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징계하겠다는 엄포를 놓기에는 너무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교사 전원 그리고 학부모님들의 지원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여기 아니면 갈 데 없다는 위기의식이 있었고,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이 엄한 규율이 있어야 한다고 적극적인 지원도 있었습니다. 학교위치도 가까워서 좋았고, 에어컨 잘 나오지, 훌륭한 시설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규모도 있으니 따라주신 겁니다.

학생들을 잡아 가면서 어느덧 6개월은 지나가고, 조마조마 하는 마음으로 재단이사장을 만났습니다. “아직 이사 갈 곳을 못 찾았으니 한 1년만 더 연장을 해주시면 어떨까요”하니
“그 동안 학교 운영하는 것을 유심히 보아 왔는데, 그만 하면 더 있어도 좋다 I observed what you did so far, it’s not too bad , you may stay longer”

어 그래
이젠 당분간 다리 좀 뻗고 잠 좀 잘 수 있겠군, 그날 몇몇 친구들을 불러서 대취하고…

지루한 얘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