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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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컨설팅을 하면서 나눠드리고 싶은 글들 입니다.

오바마 성공의 발판 된 美대학 교육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8-11-20 12:00
조회
393
이번 미국대선에서 승리한 오바마의 얘기는 너무 잘알려져 있어 새삼 부연할 필요는 없을것이다.
다만 나는 교육컨설턴트로써 옥시덴탈 칼리지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학에 편입하여 하바드 법과대학원을 졸업한 그의 학력에서 남 보다 느끼는 바가 많았다.

그리고 미국이 독립 100년 만에 세계 최강국의 반열에 오른 원동력을 새삼 절감했으니 그게 바로 미국 대학교육 아니 미국인의 관용이었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2008.11.19 동아일보에 실린 한 논설위원의 칼럼을 무단으로 싣는다. 혹 저작권에 문제가 생기면 즉시 연락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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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성희 (동아일보 논설위원)

“다른 나라였다면 내 이야기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2004년 7월 27일 민주당 전당대회에 등장한 버락 오바마 주(州)상원의원은 자신의 가족사를 ‘아메리칸 드림’과 연결시켰다. 그는 케냐에서 양떼를 키우던 아버지의 근면과 인내 덕분에 자신이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며 미국이 기회의 땅임을 강조했다. 현대판 아메리칸 드림은 퇴색하고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가 대학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면 ‘대통령 오바마’는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흑인 차별철폐-우대까지 했기에

KAIST 서남표 총장은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단연코 미국 대학들”이라고 말했다. 차별철폐정책(affirmative action)을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이 대학이었다. 1963년 인종차별로 유명했던 남부 앨라배마대에 흑인 2명이 입학하려 했을 때 조지 월러스 앨라배마 주지사는 “오늘도 격리, 내일도 격리, 영원히 격리”라며 이를 방해했다. 그해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흑인을 입학시키기 위해 연방군까지 동원했던 것이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삽입된 유명한 장면이다. 정부 차원의 민권법이 통과되기도 전의 일이다.

앨라배마대뿐만 아니다.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브라운대 조지타운대 등 명문대들이 입학전형에서 인종과 성(性)을 배려하기 시작했다. 흑인을 입학시키느라 성적이 더 나은 백인 학생들을 떨어뜨리는 일이 늘어났다. 연방대법원은 판결로 차별철폐정책을 뒷받침했다.


이 덕에 1950년대 하버드대 졸업반은 전원 백인이었지만 1970년대 말에는 여성 40%, 흑인 8%, 아시아계 6%, 히스패닉 5%였다. 1997년 캘리포니아 주에서 역차별 논란으로 이런 관행이 철폐되기 전까지 ‘대학이 다양하지 않으면 대학이 아니다’는 명제는 모든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였다.


오바마가 차별철폐정책에 따라 입학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차별철폐정책이 가장 강력히 시행됐던 시기에 대학을 다닌 것만은 틀림없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대학교육의 수혜자라 할 만하다. 오바마가 1979년 입학한 로스앤젤레스 옥시덴털대만 해도 그저 그런 대학이 아니다. 이 대학은 12만 명의 대학생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가장 자유로운 대학 1위(베스트 칼리지 2009년), 인문단과대학(리버럴 아츠 칼리지) 랭킹 37위(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지 2009년)를 차지했다. 이곳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정치의식에 눈뜬 오바마는 2년 후 뉴욕 컬럼비아대로 옮겨 정치학을 전공한다.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도 학비 부족으로 여러 군데의 대학을 옮겨 다녔다고 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경직되지 않은 대학들의 편입정책이다. 미국 대학들은 수시로 편입생을 받으며 어떤 대학을 다녔는지가 아니라 학생들이 예전 대학에서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가를 중시한다. 열심히만 한다면 지방 단과대학에서 아이비리그로 쉽게 옮길 수 있다. 물론 졸업하느냐 못하느냐는 자신의 실력에 달렸다.

43세에 책 印稅로 학자금 갚아

예나 지금이나 계층이동의 통로가 되어 주는 것은 대학의 중요한 역할이다. 컬럼비아대와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장은 오바마 같은 흑인이 주류사회로 진입할 수 있는 보증수표가 되어주었다. 오바마는 다른 학생들처럼 학자금을 빌려 대학에 다녔다. 그는 자신의 저서가 출간된 2004년, 나이 43세에야 인세로 학생 때 빌린 대출금을 갚았다. 우리도 가난한 학생들이 대학을 다닐 수 있도록 학자금 및 장학금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우리 대학들도 과거엔 가난한 수재가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유일한 통로 역할을 했지만 어찌된 셈인지 지금은 엘리트 기득권 수호자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우리 대학들이 미국 대학에서 본받을 것이 어찌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 편수뿐이겠는가. 다양성의 존중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야말로 우리 대학들이 미국 대학에서 배워야 할 가치다. 우리도 언젠가는 필리핀, 베트남인 어머니를 둔 아이가 대학교육 덕에 대통령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김선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