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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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컨설팅을 하면서 나눠드리고 싶은 글들 입니다.

교장임기를 마치고(4) “짐을 벗고 가벼운 마음으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4-08-09 12:00
조회
353
6년간 재임기간동안 제가 역점을 두었던 것은 두 가지 였습니다.
하나는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교육의 질을 높여
“다니고 싶은 학교, 보내고 싶은 학교”로 가꾸는 일이었습니다.
그 때만해도 학교에 안 오는 학생과, 안 보내는 집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주중에 명문 국제학교를 다니는 집에서는, “학교에 가서 배울 게 없다.” “덥다.” “재미 없다.”등이 이유 였습니다.
명문 국제학교의 시설은 한인학교 보다 훨씬 좋아서, 에어컨도 잘 나오고, 교실도 반듯했습니다. 한인학교를 방문해본 부모들은 시설이 낙후되었으니 안 보내는 것이었죠.
국제학교에서 울고 돌아오면 아무 소리 안 해도 한인학교에서 울고 돌아오면 교사탓을 하면서 목청을 돋구는 학부모님들이 있었습니다.
학부모들 상대는 오히려 쉬웠습니다. “한국사람이 한국어를 모르고 영어나 중국어만 잘해서는 제값을 못 받는다. 안 다니면 손해다. 나중에 가슴을 치고 후회하지 말고, 학교에 밀어넣어라”라고 설득하면 대충 이해를 했습니다.

문제는 학생들입니다. 이세상에 공부하기 좋아하는 학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공부가 싫어도 재미 있으면 나오는 법입니다.
교사들에게는 처음에 학교에 나오실 때처럼 열정을 가지고 학생들을 대하라고 늘 부탁을 드렸고,
체육시간을 신설해서 농구, 축구, 베드민턴, 탁구 체육기자재를 비치해놓았습니다. 땀 흘리기 싫어하는 학생들에게는 4,000권의 한국교양도서를 마련하여 대출했습니다.
책을 보던 안보던 쉬는 시간에 한두권의 책을 빌려서 끼고 다니는 게 유행이 되었습니다.
음악시간을 신설해서 한국노래 가르치고, 한국어가 서툰 학생을 위해서 특별 한글반을 개설했습니다. 여러 가지를 가르쳐야 하니 수업시간도 늘려야 했습니다.

방송장비를 설치해서 학교캠퍼스 어느 곳에서나 등교하면서 또 쉬는 시간에 한국노래를 들을 수 있게 했습니다.
봉사활동 나오는 한국대학생들에게 사물놀이, 태권도 시범등을 보여주니 그런대로
학교생활이 재미 있어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게 한인학교에 짧게는 1년 길게는 15년을 봉직하신 교사전원의 헌신적인 노력 없이는 보내고 싶은 학교로 가꿀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교사들에게 제가 다 책임질 테니 학생이 잘 못하면 벌도 주라고 했습니다. 자기애에게 벌주었다고 불만을 갖는 부모님들이 만나서 한 두시간 얘기 하고 나면 이해해 주셨습니다.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얼마 안 되는 월급을 받고 정규학교 교사 만큼이나 수고하는 교사들이 있었기에 이 정도의 학교가 운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교사들을 믿고, 존경하면 결국 자녀들이 덕을 보게 되는 것이죠.
학부모님들 또한 일일교사로서 청소와 학생지도 수업종 치는 일을 군소리 없이 해주시고 있기 때문에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교사들이 실력이 없어도, 교수법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경험이 부족해도 믿고 맡겼기 때문에 교사들도 열성적으로 임했던 것이었습니다.
대사관에서도 학교문제라면 우선적으로 지원해주시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축구동호회, 충청향우회, 삼성그룹 같은 지역사회의 동참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또 하나는
학교설립을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학교설립을 위해서 정부에 신청도 하고, 건립기금을 모으기도 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한인학교를 꼭 설립해야 하는 가 하는 회의가 생겼습니다.
1. 우선 학교를 건립하면 주말학교가 아닌 전일제로 해야 합니다. 주말 하루 쓰자고 수십억을 쓸 수는 없습니다. 주중에 한인회나 부인회에서 사용하면 어떠냐는 의견도 있지만 몇 개 교실이나 사용하겠습니까. 교회와 같이 쓸 수 있는 학교를 만들자고 하는 데 교회도 20여개가 있는 데 어느 교회와 같이 쓰며, 같이 하지 않는 교회에서 가만 있을 리도 없습니다.

2. 외국까지 나와서 굳이 한국교과정으로 가르치는 학교에 부모들이 보낼 것인가.
한국학생들이 다닐 수 있는 현지학교나 국제학교라는 교육기관이 없는 곳이라면 당연히 학교를 지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전일제 한인학교가 있는 나라를 보면 대체로 국제학교나 교육기관이 없는 나라에만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는 국제학교도 학부형의 재정능력에 따라 보낼 수 있는 곳이 유형별로16개가 있고, 중국학교에도 보낼 수 있는데, 굳이 한국교과과정을 따르는 학교에 학부형들이 과연 보낼 것인가

3. 그렇다면 국제학교를 지어야 할 것입니다. 국제학교란 여러국적의 학생들이 같이 공부하는 곳을 말하는데, 한국학생이 30%만 넘어도 그것은 국제학교가 아니라 한인학교입니다 그런 학교에 외국학생들이 입학을 하지 않을 겁니다.

4. 설사 외국인 학생도 다닐 수 있는 국제학교를 만들었을 때 등록금 수준은 어디다 맞출 것인가. 말레이시아에는 연간 300만원 수업료 내는 국제학교부터 연간 1,500만원하는 학교까지 있습니다. 300만원에 맞추면 1,500만원 내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오지 않을 겁니다. 대체로 비싼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들은 회사에서 학비보조를 해주는 데 굳이 300만원짜리 학교에 보내지 않을 겁니다. 반대로 1,500만원 수업료를 받으면 많은 학생들이 들어오고 싶어도 재정 형편상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학교건립하는 때가 아닌 겁니다. 현실성, 당위성, 실효성이 없는 때 입니다.
한인들이 많아지고 학생수가 늘어나서 300만원짜리이던 1,500만원짜리이던 한 학교를 구성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주중에 영어학교, 중국학교 다니고 주말에 한인학교에 와서 한국어를 잊지 않도록 하는 게 이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세계에서 영어 중국어 한국어를 동시에 배울 수 있는 나라는 아마 말레이시아뿐일 겁니다.
미국 호주 영국 뉴질랜드에서는 학교를 들어가면 영어만 배우는 것입니다. 중국에 가면 영어 배우기 힘듭니다. 또한 한국어도 배울 데도 없습니다.



공인 아닌 공인이라 그 동안 말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이제는 학교를 위해서도 할 소리를 해야 하겠습니다.

제가 재임하면서 힘들었던 부분은 한인회와의 관계였습니다.
한인회에서 거는 시비는,
한인체육대회를 하는 데 한인학교에서 동참하지 않아서 대회가 잘 안되었다.
한인학교는 한인회 소속이다.
한인회 산하로 들어오지 않으니 불법단체로 고발하겠다.
학부형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서 한인회에서 재정감사를 하겠다.
교장이 장기 독재를 하고 있다.

감사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합니다.
교장직 어렵습니다. 학교 운영위원회에서 임명해서 연임한 것입니다.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나와서 하면 저는 짐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한인학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의무가 있습니다. 한국교과과정 1주일치를 하루만에 소화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중요한 과목만 가르칩니다. 1년에 45일 수업하는데 체육대회를 한인회와 같이 안 한다고 한인회장이 공개적으로 비난합니다. 체육대회를 공휴일에 하루 하는데 무슨 수업에 방해되느냐고 합니다. 체육대회 하루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일 이 많습니다. 예행연습도 해야 합니다. 그만큼 수업일 수가 줄어듭니다. 한인회는 인원동원을 위해서 한인학교의 참여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학생들은 주중에 다니는 국제학교에서 각자 다 체육대회가 있습니다.

과거 몇 명의 한인회장께서 출마하면서 한인학교를 건립하겠다, 또는 발전을 위해서 돈을 쓰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그런 분들이 당선이 되서 한인학교에 한인회장 개인적으로나 한인회 차원에서 돈 한푼 지원한적 없습니다.
친목단체인 한인회에서 교장을 선임해서 보내겠다고 합니다.

한인회는 친목단체이고 학교는 교육기관으로서 별개의 기관입니다.
각자 자기가 할일을 열심히 하면 됩니다.
학교는 비정치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아마 한인회에서 싫어하는 것은 학교가 아니라 제 개인이었을 겁니다. 이제 말 안듣는 교장이 물러났으니 한인학교에 많은 지원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한인학교에서 15년 봉직한 정혜영 신임교장선생님이 잘 이끌어 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짐을 훌훌 벗고 물러납니다.

그 동안 능력이 모자르고 덕이 부족한 저에게, 사실은 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학교발전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 드립니다.

지루한 얘기 읽어 주신 여러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