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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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노무현 당신마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4-14 12:00
조회
432
아들놈들이 모두 중학생이 되면서 가급적 뉴스는 함께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1박 2일’이니 ‘패밀리가 떴다’니 하는 연예프로그램에 중독된 아이들의 관심을 돌리려는 의도와 함께 아이들도 세상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세상사가 아름다운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뉴스에 등장하는 사건,사고라고 하는 게 비교육적 내용이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막연한 염려는 했었지만 나의 시도는 초반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이 조용해지자 마자 ‘시골의 한 여성공무원이 복지예산 11억을 횡령했다’느니 ‘보이스피싱 사기에 걸려 여대생이 자살했느니’하는 뉴스가 줄줄이 이어졌다.
아이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아빠, 왜 저렇게 나쁜 사람이 많아"하는 질문에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라고 얘기하기가 민망스러웠다.
거기에 연예인의 자살사건과 함께 ‘성접대’니 ‘성상납’이니 하는 말이 뉴스를 도배질 하더니 곧이어 청와대 공무원의 성매매까지 등장했다.

"아빠, 성을 상납한다는 게 무슨 뜻이예요"
"그리고 매매와 접대의 차이는 또 뭐예요"

내심 ‘이 자식들이 알고서 일부러 묻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이 기회에 아이들의 최대 관심사인 성 얘기를 자연스레 꺼내고 연예계에 대한 환상을 깨트리는 데 좋은 소재라 생각하여 열심히 설명 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연이어 뉴스의 첫 화면을 장식하는 노무현대통령의 뉴스를 보면서 던진 아이들의 질문에는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빠, 대통령이 제일 높은 사람인데 왜 돈을 받아"
"한국 대통령은 다 나쁜 사람들이지"

내가 선뜻 대꾸를 못한 이유는 정말 진실을 모르겠기에 그랬던 것이다.
사실 엊그제만 해도 돈을 받았다고 고백한 노무현 대통령의 용기에 역시 역전의 대가라는 감탄과 함께 ‘본인이 아닌 부인의 탐욕 때문이었겠지’라며 반신반의 했다.
또한 살아있는 두 군출신 대통령이 나란히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선 게 언제고 민주화를 내세우며 등장한 80중반의 두 대통령의 자식들이 줄줄이 감방을 들락거린 게 바로 어제일인데 설마 똑 부러지는 노 대통령이 그런 멍청한 짓을 했을까 하는 믿음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뉴스를 보니 그 설마가 기어코 사람을 잡을 모양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아, 노무현....당신마저라는 낮은 독백이 흘러나왔다.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그나마 이 정도에서 마무리 되길 바라지만 어디까지 추한 모습이 전개될 것인지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
더욱이 거짓말 보다 더 가증스러운 것은 당사자나 측근 모두 한결같이 억울해하고 단 한사람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진정한 참회의 모습을 보이질 않는다는 점이다.

상태가 이 정도면 아이들에게 달리 설명할 재주가 없을 것 같다.
한 가지 방법은 우리사회 전체가 심각한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증세에 빠져있다고 할 밖에.
‘사람은 자신의 신념과 행동 간에 일관되지 않거나 모순이 존재할 때 이를 불쾌하게 여겨 이것을 감소시키려고 한다’는 심리학 이론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을 줄이기 위해 사람은 신념이나 행동을 바꾸려 시도하는데, 신념은 다른 사람들이 모르지만 행동은 이미 드러났으므로 결국 행동에 맞게 자신의 신념을 바꾸게 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단순한 거짓말이나 위선의 차원을 넘어 최후 보루인 자신의 양심까지 속여 극도의 자기합리화 또는 자기정당화에 이른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나로서는 새삼스런 지적이 아니다.
민주니 진보니 또는 친노다 반노다 하며 핏대를 올리던 대부분의 세력들이 사실은 심각한 위선과 인지부조화 상태라는 점을 일찌감치 단정해 왔기 때문이다.

문득 오늘 저녁 이에 대해 아이들이 질문을 해오면 뭐라 할지 생각해 본다.
‘아들아,세상에는 정직한 사람이 훨씬 많단다’
‘그래도 세상은 점점 나아지고 있단다’
그것도 아니면 그저 대한민국은 위대한 국민이다, 아자~ 아자~ 파이팅 이라고 할까.

지금껏 봐온 역대 대통령의 비리사건과 일이 벌어질 때마다 전국민이 패가 갈려 비아냥과 조롱으로 치고받던 학습효과가 이번에는 또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조마조마 하다.
그러고 보면 이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인지부조화, 즉 위선으로 밖에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늦기 전에 오늘은 아이들에게 알기쉽게 위선과 거짓의 차이를 분명히 가르쳐야겠다.
김선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