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칼럼

운영자 칼럼

교육컨설팅을 하면서 나눠드리고 싶은 글들 입니다.

김영수 소령 구하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10-15 12:00
조회
536
엊그제 납품을 둘러싼 내부비리를 고발한 어느 직업군인의 얘기를 TV를 통해 우연히 시청하게 되었다.
사실 이런 형태의 비리와 부패는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와 새삼스럽지는 않았지만 가장 명예를 존중해야 할 군대조직의 비열함과 위선이 예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내가 사병으로 복무했던 30년 전에도 소원수리라는 제도가 있었다.
구타가 횡행하던 당시에 상사의 부당한 구타나 부패에 대해 불시에 감찰부대에서 무기명으로 설문조사를 받곤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무기명이 무기명이 아니었다.
어느 누구든 이실직고 했다가는 부대가 발칵 뒤집어져 끝내 고발 당사자를 찾아내어 어떤 형태로든 보복을 하곤 했다.
그래서 고참들은 우리에게 신신당부하곤 했다.
쓰라고 해서 절대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해 보면 이는 단순히 군대 조직이나 지금 시대만의 현상이 아니다.
그간 우리역사에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나 조직 내부적인 반성과 개혁이 이루어진 전례는 극히 드물다. 대신 입바른 소리에 대해서는 철저히 수모를 주고 보복을 했다.
혁명가 임꺽정과 전봉준이 그랬고 조광조와 정약용도 그랬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기억 속에도 민주화 이후 숱한 내부비리 고발사건들마다 고발은 순간에 끝나고 대신 길고긴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부 고발자들이 부지기수다.
즉 나와 조직의 밥줄이 민주니 진보니 하는 이념보다 우선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에도 감사원의 내부 고발을 했다가 파면당한 전직공무원이 보도된 적이 있었다.
학습지 외판원 생활을 하다가 자그만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그에게 “그 때가 다시오면 다시 고발 하겠느냐”고 기자가 질문을 하자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이렇게 대답했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절대 내부고발은 하지 않을 겁니다. 한때 진실을 밝히려는 내 행동이 이렇게 큰 고통을 안겨줄지 몰랐습니다“

김소령과 한때 동료였던 군 간부들의 따돌림과 변명을 들으며 이제 김 소령과 그의 가족 역시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찍혀 수모와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은 염려가 들었다.
특히 같은 해군 참모총장까지 나와 새카만 부하를 상대로 ‘일신상의 영달을 위해 저지른 행위’라고 모욕을 주는 조직의 잔인성에는 분노가 치밀면서 얼마 전 후배가 해준 ‘역린(逆鱗)’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한때 회사동료였던 현역의 후배는 회사내에서 다소 돌출된 언행을 일삼았던 내게 넌지시 ‘우리 사회에서는 역린(逆鱗)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김영수 소령 역시 그 역린을 건드린 셈이다.

‘역린’
한비자(韓非子) 세난편(說難篇)에 나오는 말로 용(龍)이라는 짐승은 잘 길들이면 올라탈 수도 있지만 그의 목 아래에 있는 직경 한 자쯤 되는 역린, 즉 다른 비늘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 있는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상대를 죽인다고 하는 그 얘기 말이다.

지금 우리사회의 역린은 밥줄 즉 돈이다.
최충헌의 고려 무신시대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고 들고 일어났던 노비 만적의 말을 지금 버젼으로 바꾸면 ‘타워 팰리스에 사는 놈의 씨가 따로 있느냐’쯤 될 듯하다.
그리고 그 밥줄의 뿌리는 비리와 맹종이고 밥줄을 지키기 위한 조직의 토양은 충성을 앞세운 맹종이다.
특히 예전보다 공무원의 대우가 월등해져 박사학위 소지자까지 시청청소부를 지원하는 현실에도 공무원들의 허기와 탐욕은 변한 게 없다.
얼마 전에도 지방 소도시의 한 여자 공무원이 저소득층 생계비를 8억이나 횡령하려 우리는 놀라게 했고 수 년 전에는 한 지방 세무서 말단 직원의 뇌물일지가 공개되어 회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그의 비밀장부에 의하면 매일매일 수십만 원씩 거둬들인 뇌물이 매월 수천만원에 이르렀고 아예 목표금액까지 설정해 놓고 고급아파트와 외제차를 구입하고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까지 한다는 착실하고 야무진 계획까지 들어있어 우리를 경악케 했었다.

단언컨대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부패는 언젠가 또다시 우리의 숨통을 끊을지도 모를 가장 치명적인 암세포다.
기억컨대 구한말 조선을 여행했던 ‘비숍’여사의 기행문에도 조선의 탐관오리를 흡혈귀에 비유하고 절망적인 상황이라고까지 단언했다.
그리고 실제 10년도 안되어 대한제국의 숨은 멎지 않았던가.

어찌 보면 조사받는 피의자나 조사하는 수사기관 당사자 모두 그 뿌리에 연루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날 때 마다 어느 선에서 봉합을 하고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느냐가 수사기관의 실제 역할이 되곤 했다.

쓸쓸하게 부대 담장을 홀로 걷는 김소령의 마지막 화면을 보며 나는 지금 그가 적지에 떨어진 ‘라이언 일병’보다 훨씬 강력하고 집요한 내부의 적들에게 에워싸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동료에 대해 피도 눈물도 없는 인격적 보복을 하는 그 맹종의 동굴에서 그를 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내 생애 단 한 번도 촛불을 들어보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기꺼이 촛불을 들어야겠다.

이 글을 그들이 볼 리는 없겠지만 김영수 소령과 그의 해군 동지들에게 한마디 한다.
그들의 대선배인 해군 참모총장을 지내신 충무공께서 13척의 배를 이끌고 나선 명량해전을 앞두고 하신 말씀이다.

필생즉사 사즉필생

김 소령의 건투를 빈다.
김선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