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칼럼

운영자 칼럼

교육컨설팅을 하면서 나눠드리고 싶은 글들 입니다.

고흐 와 도스토 예프스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8-28 12:00
조회
478

작품명 : 아이리스(Irises) 1989년, 고흐가 정신병원에 요양을 하며 그린 작품.
해설 : 살아 있을때 단 한 작품, 그것도 400프랑(약 10만원)이라는 헐 값에 팔려나간 그의 이 작품이 사후 97년 만인 1987년 미국 소더미 경매에서는 무려 5,890만 달러(지금환율로로 약 700억원)에 낙찰되어 세계를 경악시킵니다. 금잔화와 붓꽃의 조화가 멋지게 표현되어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누구의 얘기였던가.
저는 얼마 전까지도 그게 귀신들이 씨나락을 까먹을때 나는 소리로만 알았는데 나이 탓인지 그 의미를 조금은 알 듯 합니다.
특히 예술중에도 그림이라면 완전 무재능인 제가 고흐의 그림에는 뭔가 끌어당기는 힘을 느끼곤 하니 이런 변화는 아무래도 자연의 순리로 밖에는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비록 모사화이긴 하지만 순전히 손으로만 그린 고흐의 그림 몇 점을 사무실에 걸어놓고 시시때때로 감상에 빠져들곤 합니다.


물론 원화와 100% 같을 수도 없고 설사 같다고 해도 분명 원화가 아닌 이상 짝퉁 아니냐고 하실 분 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한 점에 700억이 넘는다는 원화를 걸 수야 없지 않습니까.
더욱 놀라운 것은 인터넷 상의 고흐의 그림이라고 소개되는 것 들을 보면같은 작품이라도 색상과 브러싱이 조금씩 다른 종류가 10여 개에 이른다는 사실입니다.
즉, 원래의 작품은 하나지만 그것을 복제한 그림들을 원화로 잘 못 알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말은 결국 박물관에 가서 확인하지 않는 이상 고흐의 그림을 가지고 진짜냐 가짜냐의 논쟁은 무의미 하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 한국의 눈부신 인쇄기술로 복제한 그림을 걸어봤더니 그들의 선전과는 달리 인쇄는 인쇄일 뿐 영 감흥이 아니더라구요.
그렇다고 특수한 기법으로 제작한 그림이 있다길래 찾아갔더니 같은 인쇄 물 위에 살짝 투명 물감을 덧 칠한 수준으로 100만 원에 이르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그것 역시 고흐의 숨결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4,5년 전 동남아에서 살 때 어느 예술인 마을에서 보았던 리플리카가 떠 올랐습니다.

부리나케 건너가 처음부터 직접 손으로 그린 그림을 찾아내 걸고 나서야 비로소 고흐의 열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나라도 이제 그림 한 점쯤 집에 걸어 놓을 싯점이라고 확신합니다.

아무튼 어느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서양화가는 고흐라고 합니다.
이는 내가 중학교 미술교과서에 본 그의 그림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듯이 아무리 미술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고흐의 그림에는 크든작든 인상이 남아 있기 때문 일 것입니다.
꿈틀거리듯 이글거리는 태양, 거친 붓 놀림과 강렬한 색상
그러나 그의 그림이 아무리 독창적이라 해도 그의 열정적이다 못해 정신질환에 이르기까지 한 37년의 생과 비극적 최후가 아니었다면 느낌은 훨씬 덜 했을것입니다.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불화(不和)입니다.

가족과의 불화
친구와의 불화
하느님과의 불화

그러나 그 불화는 알고보니 그의 다혈질적이고 충동적인 성격때문이지 세상 탓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냉정했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가족 특히 목사였던 아버지와 주위사람들로부터 냉대를 받았으며 나이가 들면서는 질식할 것 같은 열정이 오히려 여자들에게는 부담이 되어 번번히 실연을 당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리 예술가라도 밥의 문제 즉 돈과 가난 앞에는 철저하게 발가벗겨 집니다.

그래서 살아생전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 주었던 동생 테오에게 돈 보내달라는 편지를 죽을때까지 쓰고 또 쓰고 또 괴로와 하며 자존심은 갈갈이 찢겨집니다.

어찌보면 동생도 이런 또라이 형으로 인해 꽤나 골치 아팠을 겁니다.
하지만 그나마 형의 정신상태와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인간이라곤 지구상에 자기 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었던 거지요.

그런 점에서 저는 고흐와 함께 도스토예프스키를 연상하게 됩니다.
도스토 예프스키는 의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 자랐지만 평생을 도박 중독과 빚에 시달리는 삶을 살았지요.
또한 그 역시 고흐와 비슷하게 우울증과 간질로 고생했던 점도 기막히게 닮았습니다.

특히 40중반에 쓴 불후의 명작 죄와 벌에서 그는 물질이 아닌 인간내면의 휴머니티를 강조했지만 사실은 그 소설 역시 빚을 갚기 위해 쓴 것이라고 합니다.
어찌보면 가난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구가 고흐에게는 그림이, 도스토 예프스키에는 소설이 되었던 것입니다.

고흐의 최후는 권총자살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누구도 그의 자살을 확실하게 증명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권총자살처럼 머리에 총을 쏜게 아니라 복부에 총을 쏘고 스스로 걸어서 집에 돌아오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2일간의 치료끝에 동생 테오의 앞에서 특별한 말도 없이 숨을 거둡니다.

이 글을 읽는 그대여,
지금 불화를 겪고 있습니까?
좌절에 빠져 있습니까?
아니면 허무합니가?
고흐의 생애와 그림을 보며 세상과 화해하십시요.
그리고 태양 같은 열정은 아니라도 식어버린 가슴에 작은 화톳불이라도 지피심이 어떠하실런지요.

인생, 정말 짧습니다......

김선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