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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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컨설팅을 하면서 나눠드리고 싶은 글들 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단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5-22 12:00
조회
468
요즘 내가 부업으로 하는 강의에서 떠들어야 하는 주제는 ‘올바른 직업가치관’ 이라는 생각만 해도 짜증스런 제목이다.
하지만 유명강사도 아닌 마당에 강의주제를 내 마음대로 선택하기도 어려워 기꺼이 수락은 했지만 빤한 내용을 가지고 청중들의 반응을 이끌어 내기가 만만치 않다.
더욱이 대부분의 수강자가 서비스업 일선에 종사하다보니 어설픈 개그나 입담으로는 수강생들의 막강한 현장경험을 제압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택한 강의전략은 다소 학문적인 정공법으로 서비스업에 대한 오해와 공짜심리를 공략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 잘못 받아들여진 외래어중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서비스’란 용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순서로 표현되는 직업적 차별의식 속에 ‘商’, 즉 서비스업’은 천덕꾸러기 였다.
게다가 20세기 중반까지도 농업중심의 국가였던 우리에게 유통이니 금융이니 하는 서비스 업종은 그 개념조차 파악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서비스라는 외래어를 우리말로 번역한 게 한자어로 ‘봉사(奉仕)’다.
물론 그 번역이란 것도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건지 아니면 중국을 통해서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서 70-80년대 까지만 해도 관공서에만 가면 ‘국민에 대한 봉사’니 ‘봉사하는 경찰’이니 하는 말을 표어처럼 붙이는 게 상례였다.

그러나 봉사라는 단어 속에는 대가없이 베푼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오류가 있다.
국어사전에도 봉사는 이렇게 정의 되어 있다.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씀”
이렇게 왜곡된 개념은 곧 공무원들로 하여금 국민을 위해 대가없이 일하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고 부정과 부패로 연결되는 단초를 제공해 왔다.
예컨대 지금도 식당에 가면 “이건 서비스예요“ 하며 고기 몇 점을 더 주거나 정치인들이 뻑하면 ”국민을 위해 봉사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가 아는 한 그 어떤 공무원이나 정치인도 무급으로 봉사한 사람은 없다.

엄밀히 말하면 식당에서 말하는 서비스는 공짜나 덤으로 표현해야 하고 거꾸로 정치인들이 들먹이는 봉사는 "서비스업에 취업을 하겠다"고 해야 옳다.
식당에서 주는 공짜음식도 따지고 보면 원가에 이미 포함되어 있고 정치인들 역시 봉급대신 세비니 특수활동비니 하는 애매한 명목으로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고 이권개입으로 상상이상의 이득을 챙기지 않는가.

그러면 서비스의 요체는 무엇인가.
‘재화’니 ‘용역’이니 하는 교과서상의 의미보다 더 중요 한 것은 바로 ‘서비스도 상품의 일종이자 거래’라는 인식이다.

‘거래(去來)’.
영어로 말하면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다.
즉, 주는 자나 받는 자나 공짜가 아닌 대가를 주고받는 거래라는 것이다.

유럽이 선진국이 된 것도 너무 당연하고 상식적인 이 진리를 일찌감치 깨우친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15세기 까지만 해도 유럽은 암흑시대였다. 가톨릭의 막강한 영항아래 모든 경제활동이나 예술활동의 중심에 하느님이라는 감히 넘보지 못할 존재가 있었다.
그래서 상거래를 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를 극히 부도덕하게 생각했다.
바로 그 틈새를 파고든 사람들이 유대인이며 아직까지 세계 금융계를 쥐고 흔드는 유대인들의 뿌리가 바로 거기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16세기 들어 종교개혁과 때맞춰 성경이 보급되면서 유럽인들의 ‘부(富)’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급격히 공업화와 서비스업의 발전이 진행된다.
그리고 이런 경제적 발전은 자연스레 인권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로 이어져 지금의 민주국가로 이어 진 것이다.
바로 그 뒷 배경이 바로 ‘기브 앤 테이크’라는 투자심리와 자기책임 정신이다.

그러나 후진국은 어떠한가.
내가 아는 한 후진국의 대부분이 ‘기브’보다는 당장의 ‘테이크’ 밖에 몰랐다.
아니 선진국의 사례를 알면서도 정부나 국민 모두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에 대해서는 환경적인 요인이나 정치, 종교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아무튼 그 결과는 경제에만 그친 게 아니라 모든 일상에 고통을 수반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대부분의 저개발국에 가면 공무원이 마치 시혜를 베풀듯 국민을 대하는 모습을 쉽게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가.
자존심 상하는 소리겠지만 불과 50년 전 까지도 지금의 후진국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60-70년대에 과감하게 투자를 잘 한 덕에 2차 대전 후 출발한 100여개의 신생독립국중 거의 유일하게 선진국이 됐다는 점은 아무리 부인해도 기적에 가깝다.
그런 경제적 기반위에 비로소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여느 선진국과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마음에는 여전히 농경사회의 평등심리 그리고 공짜심리가 살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공공기업이나 대기업등 힘이 막강한 조직의 구성원일수록 그 강도는 쎄다.

내가 대기업에 근무할 때 대리점 관리와 영업을 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항공업이 대한항공의 독점인데다 실적제도 아닌 고정월급제하에서 대리점 영업은 말이 영업이지 사실상 그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다보니 식사나 술자리는 으레 대리점이 알아서 계산을 하고 명절 때만 되면 찔러준 상품권을 나누느라 분주했다.
신입시절에는 그들이 고객인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영세한 그들의 접대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게 사회였고 약육강식의 조직생리였다.
또 그들을 접대해야 할 일이 있어도 회사 돈을 쓰는 탓에 웬만해서는 내 돈이 새 나갈 일이 없었다.
이런 꽃 놀이패를 쥐고 흔들며 나와 동료들은 서서히 공짜라는 마약에 중독되어 갔다.

하지만 회사를 나와 을의 입장이 되자 현실은 가혹했다.
아무리 막역했던 사이라도 맨입에 부탁이라도 하려면 쥐구멍을 찾아야 했고 식사라도 함께 하면 숟가락을 놓기도 전에 부리나케 계산대로 뛰어야 했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담당했던 대리점 직원을 만나 입장이 바뀐 현실을 얘기하자 그가 작심한 듯 싸늘하게 이렇게 대꾸하는 게 아닌가.
“말이 대기업 직원이지 사실 거지근성들이 있잖아요”
순간 ‘이 자식이 나한테 하는 소리구나’ 하면서도 달리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이는 비단 거래행위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내가 교육문제로 고객들을 상담할 때 가장 어려운 점도 우리의 내면 깊숙이 틀어박힌 공짜심리 때문이다.
예컨대, 대부분의 한국대학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입학과 동시에 졸업을 보장해주는 관계로 우리의 관심은 오직 입학여부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나 선진 외국대학은 입학은 비교적 수월하되 성적이 부진하면 가차없이 중간에 쫒겨나는게 상식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현실을 설명해도 설마하며 믿으려 하지 않는다.
즉, ‘어떡하든 입학만 하면 졸업은 자동이 아니냐’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심지어 ‘미국 아이비리그의 한국유학생의 중도 탈락율이 44%에 이른다’는 통계를 들이밀어도 소용이 없다.

사실 이런 우리의 공짜심리는 뿌리가 깊다.
다른 칼럼에서도 몇 번 언급했지만 철부지 아이들에게도 세뱃돈이니 학용품값을 우격다짐으로 쥐어줘야 체면이 서는 우리의 무차별적인 뽀찌문화 역시 공짜심리를 키우는 자양분이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과 노력은 생각지도 않고 그저 대기업 취업만 바라고 경제상황만 탓하는 것도 같은 연유다.
또 기업인들의 돈질이야 생존을 위한 본능이니 그렇다 쳐도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위치에 오른 권력자들의 끝없는 부패스캔들 역시 끈질긴 공짜심리로 밖에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지금 와 생각하면 학창시절에 내용도 모르고 읽은 그 두꺼운 경제원론들이나 수많은 경제학자들의 복잡한 이론 역시 따지고 보면 이 말 한마디로 귀결되는 것 같다.
“There is no free lunch in Economy (경제에 공짜 점심은 없다)"

이게 어디 점심만의 문제겠는가.
미국 워싱턴 국립묘지의 한국전쟁 희생자 묘역에 가면 이런 글이 있다고 한다.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깔린 공짜심리를 극복하는 게 참 교육, 참 민주주의의 출발이 아닌가 한다.
김선엽